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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 Dec 05. 2023

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79일


 不須窮達介于懷(불수궁달개우회출세하고 못하고 마음에 두지 마라

 萬事隨宜自偶諧(만사수의자우순리를 따르면 만사가 조화롭네

 卑者謂低成坎谷(비자위저성감곡낮으면 골짜기를 이루고

 高而爲峻作巓崖(고이위준작전높으면 산꼭대기 되는 게지

 富貴莫厭千鍾粟(부귀막염천종속부자라도 천 섬 곡식 마다 않고

 貧賤須持七尺骸(빈천수지칠척가난해도 내 몸 하난 가져야지

 幸得分外猜怨集(행득분외시원집분수 넘어 가지면 시기 원망 모이나니

 與天爲敵轉相乖(여천위적전상하늘과 적이 되어 서로 어긋나게 되네

 김시습(金時習, 1435-1493), <타고난 분수를 편안해하며[안분음(安分吟)]>     


 어슴푸레 새벽을 깨우며 교육원으로 향합니다. 달하나 별 하나에 소중한 이들을 떠올리며 이들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봅니다. 이틀 뒤면 절기상 대설(大雪)입니다. 올 한해의 아쉬운 점, 미흡한 점, 실망스러운 점, 미움과 원한, 성냄과 욕심을 큰 눈에 씻겨내고 다가올 새해에는 잘 될 일, 흡족할 일, 기쁠 일, 웃을 일과 중용을 생각하는 한 해가 되시길 소망해 봅니다.     


 오늘은 김시습의 한시로 마음을 나눠볼까 합니다. 선인들은 글공부를 통하여 몸을 바로 세우고 올바른 다스림을 통해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는 일[입신양명(立身揚名)]을 일생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학구열과 출세에 대한 열정과 DNA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의 출세에 대한 인정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흐름을 거슬러 다른 삶의 방향과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을 우리는 발전이 없고 변화가 없는 사람, 욕심 없는 사람으로 단정 짓곤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의 사람인 김시습은 “출세하고 못하고 몸과 마음을  쓰지 마라.”고 강조합니다. 세상에서 유일하고도 고유한 존재인 나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묻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며 어떻게 하면 나와 가족, 이웃과 사회, 국가와 세상, 우주 삼라만상에 도움이 될지를 마음 쓰고 애태우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교직 사회의 일면을 보면 자신의 승진을 위해 가족의 희생은 말할 것도 없고 윗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내뱉지 못하고 꾹 참으며 이들의 비위를 맞추다가 자신이 병을 얻어 승진을 포기하는 사례도 허다합니다. 이는 뚜렷한 교직관이나 사명감, 소명(召命:신의 부름을 받음)없이 단지 관리자가 되면 교직 생활이 좀 편하지 않을까,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마음, 출세하고자 하는 마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과 욕구가 앞서기 때문에 일어나는 병폐이기도 합니다.     


 재물이든 지위든 쌓이고 높아지면 덜어주고 낮춤으로써 주위 사람과 생태계화의 조화와 균형을 이뤄가며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수 넘게 가지고 자신의 지위가 내가 잘 나서 된 것처럼 안하무인의 자세로 삶에 임한다면 곧 사람과 하늘, 자연이라는 공공의 적이 되어 자칫 한 발 삐긋하면 곧 추락하고야 마는 신세로 전락하기 십상입니다.      


 우리는 우주 대자연의 섭리에 의해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우주 지성과 생태계는 혼자만 독식하는 개체는 자연스레 쇠퇴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우주의 질서이자 공존과 공영을 꾀하는 도(道)이기 때문입니다.     


 멀리 경남 사천의 해안가의 갯벌을 보면서 지난번 회복교육 때 다녀왔던 순천만 갯벌의 조개, 망둥이, 게, 고동, 푸른 하늘, 갈매기, 시원한 바람, 갈대, 오리, 푸른 하늘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고 이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뤄가며 살아가는 모습을 교육원 아이들과 함께 오감으로 듣고 마음에 담아 왔습니다.      


  오늘도 하늘이 나에게 내려준 사명[천명(天命)]을 갈고 다듬으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삶을 살아가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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