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일
不左不右(불좌불우)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無重無輕(무중무경)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게 조절해서
吾守其滿(오수기만) 배에 가득 실려 있는 것들은 지키고
中持其衡(중지기형) 그 가운데서 삿대로 평형을 지켜야
然後不欹不側(연후불의불측) 기울어지지 않고
以守吾舟之乎(이수오주지호) 내 배의 수평을 유지할 수 있다오
縱風浪之震蕩(종풍랑지진탕) 비록 풍랑이 몰아쳐 뒤흔들어도
詎能撩吾心之(거능료오심지) 어찌 홀로 편안한 내 마음을
獨寧者乎(독녕자호) 흔들 수 있겠소?
- 권근(權近, 1352~1409), <뱃사공 이야기[주옹설(舟翁說)]>
오늘 문학 영재 강사 면접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두 번째 도전이며 횟수로는 네 번째 도전이기도 합니다. 우리 지역청에 문학 영재 강사는 가뭄에 콩나듯 드물게 뽑다 보니 각지에서 내놓으라 하는 국어 선생님들이 많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자리에 여유가 있다면 영재 강사로서 자신과 영재 아이들이 지닌 재능을 함께 움틔우면 좋을텐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아쉽기만 합니다. 지원하신 선생님들 모두 원하시는 결과를 얻으시길 바래봅니다.
이번 시간에 여러분과 함께 나눌 이야기는 조선 전기 문신이자 학자인 권근의 <늙은 뱃사공 이야기[주옹설(舟翁說)]>입니다. 여러분은 ‘늙은 뱃사공’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요? 지난 세월을 온몸으로 겪어 낸 노련함, 노숙함, 나라를 경영하듯 자신을 다스리는 경륜(經綸), 중용(中庸), 시중(時中), 내 삶의 주인 의식 등의 삶의 지혜가 돋보이는 분이라고 생각되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또한 가족과 떨어져 타지에서 18년간의 유배 생활이라는 크나큰 어려움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여유당(與猶堂)’이란 그의 당호(堂號:집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유(與猶)’는 일을 대함에 있어 살얼음판을 걷듯 머뭇거리듯 신중히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의 큰형님이신 정약현(丁若鉉, 1751~1821)의 집 이름인 수오재(守吾齋)도 이와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산은 큰형님의 수오재에 대한 느낌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獨所謂吾者(독소위오자) 유독 이른바 나라는 것은
其性善走(기성선주) 그 성품이 달아나기를 잘하여
出入無常(출입무상) 드나듦에 일정한 법칙이 없네
雖密切親附(수밀절친부) 아주 친밀하게 붙어 있어서
若不能相背(약불능상배) 서로 배반하지 못할 것 같으나
而須臾不察(이수유불찰) 잠시라도 살피지 않으면
無所不適(무소부적) 어느 곳이든 가지 않는 곳이 없네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나를 지키는 집에 대한 기록[수오재기(守吾齋記)]>
쉽게 편안한 쪽으로 달아나고 안주하려는 나, 잠시 한눈팔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마는 내 마음, 기후 위기 및 인공지능이라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저 노련한 뱃사공, 다산 정약용과 그의 큰 형님처럼 나를 잃지 않고 생의 중심을 잡아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며 어떤 삶의 자세와 태도로 살아가야 할까요?
밤하늘에 유독 눈에 띄는 나만의 별들에 내 마음의 좌표를 깊이 아로새기는 뜻깊은 하루하루가 되시길 바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