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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 Jan 02. 2024

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85일


 余念昔(여염석) 지난날을 돌이켜보건대

 有所親識某某(유소친식모모) 나와 친하게 지냈던 아무개는

 卽雅熟晩湖者也(즉아숙만호자야) 바로 만호와 평소 잘 아는 사람이네

 嘗爲余道(상위여도) 일찍이 나에게 말해 주기를

 晩湖年七十有餘(만호년칠십여유) “만호의 나이가 지금 70세입니다

 將往歸高城莊(장와귀고성장) 고성(高城)의 논밭으로 돌아갈 때

 多齎果核云(다제과핵운) 과수(果樹)의 씨를 많이 가지고 갈 작정인데

 嶺之東罕此物(영지동한차물) 영동(嶺東)에는 이 과일이 드무니

 吾有以播之(오유이파지) 내가 씨를 뿌릴 수 있겠다고 말했답니다

 或譏其遲暮(혹식기지모) 어떤 이가 그러기에는 나이가 많다고 놀리니

 晩湖慨曰(만호개왈) 만호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何言之小(하언지소) “무슨 말이 그리 쩨쩨한가!

 君子力(군자력오기불어기야) 군자는 능력에 관해 

 惡其不出(오기불출) 사람들이 자신의 역량 발휘에 최선을 다하지 않음을

 於己也(오기불출) 미워하지만 반드시 이 힘을

 不必爲己(불필위기) 자신을 위해 쓰이기를 추구하지 않는 법이네

 吾爲其當爲(오귀기당위)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고

 不念(불념) 나에게 이로운지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네

 利己者也(리기자야) 라고 말했답니다라고 하니

 余聞便自失(여문변자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망연자실하며

 以爲士而存心(이위사이존심) 선비라면 마음을 보존하고

 制行如此(이존심제행여차) 행동을 단속함이 이와 같아야 하네

 何患不到(하환부도) 높은 지위에 이르지 못함을

 上品地位(상품지위) 어찌 근심하겠는가

一事之微(일사지미) 미미한 한 가지 일을 통해서도

 而衆善之大(이중선지대가추) 훌륭한 여러 가지 선행을

 可推(가추) 미루어 알 수 있는 법이네

 執此夷考(집차이고) 이를 가지고 평소의 행실을 살펴본다면

 其必有大可觀者(기필유대가관자) 반드시 볼만한 선행이 있을 것이네라고 생각하며

 於是思得(어시사득) 이에 그분의 자세한 언행을

 言行之詳(언행지상)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하였네

 - 이익(李瀷, 1681~1763), <신씨네 글방의 근원을 밝히며[(신씨가숙연원서(愼氏家塾淵源序))>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어젯밤 신년 첫날을 뒤로하며 교육원에 들어왔습니다. 새해가 열리면 새 마음, 새 각오를 하며 가족과 이웃, 세상 만물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게 됩니다. 그간 안부를 전하지 못했던 고마운 분들에게도 작게나마 정성을 담아 인사를 전하기도 합니다.      


 늘 그렇듯 12월 31일과 1월 1일은 시간상으로는 어제와 오늘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의미 부여를 하느냐에 따라 그 느낌과 소망의 크기 그리고 결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새벽에 문득 깨어나 공자의 원려[遠慮, 원대한 생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성호 이익의 글이 눈에 띄어 소개해 봅니다.




  위 글의 주인공은 조선 중기 서얼 출신 지식인인 신무(愼懋, 1629~1703)란 분입니다. 만호(晩湖)는 그의 호입니다. 성호 이익의 글을 통해 신무의 평소 생명 사랑과 그가 지향한 바가 어떠한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의 인물됨과 좌우명에 관한 내용은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선구자인 이익(李瀷, 1681~1763)의 <신씨가숙연원서(愼氏家塾淵源序)>와 <만호신선생전(晩湖愼先生傳)>에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비록 그가 서출이지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고 평소 배운 것을 직접 실천하는 일을 으뜸으로 삼아 주변의 신망이 높았다는 점, 그의 나이 70세에도 불구하고 강원도 고성에 과일이 드문 것을 알고 과실의 씨를 들고 가서 직접 심었다는 점입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고, 나에게 이로운지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吾爲其當爲 不念利己者也(오위기당위 불념리기자)]”는 그의 좌우명입니다. 비록 과실을 심고 비록 5년 뒤에 생을 마감하였지만 죽는 날까지 백성들의 삶, 우주 삼라만상, 뒷세대와의 연결과 안배를 고민하고 실천하려는 의지는 지금도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됨은 물론 따스한 향으로, 잔잔한 바람과 파도로 전해져 옴을 느낍니다.     


  일찍이 공자는 “사람이 멀리 바라봄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데 걱정거리가 있게 마련이다[人無遠慮 必有近憂(인무원려 필유근우)]”고 하였습니다.     


 사람과 미물, 뭇 생명 지닌 것들에 대한 애정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역과 세계에 대한 안배이자 후손의 삶을 걱정하는 원려(遠慮, 원대한 생각)입니다. 신무는 몸소 생명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실천했다는 점에서 그의 언행과 고귀한 인품은 오늘날에도 잔잔한 울림과 감동을 전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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