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어젯밤 신년 첫날을 뒤로하며 교육원에 들어왔습니다. 새해가 열리면 새 마음, 새 각오를 하며 가족과 이웃, 세상 만물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게 됩니다. 그간 안부를 전하지 못했던 고마운 분들에게도 작게나마 정성을 담아 인사를 전하기도 합니다.
늘 그렇듯 12월 31일과 1월 1일은 시간상으로는 어제와 오늘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의미 부여를 하느냐에 따라 그 느낌과 소망의 크기 그리고 결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새벽에 문득 깨어나 공자의 원려[遠慮, 원대한 생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성호 이익의 글이 눈에 띄어 소개해 봅니다.
위 글의 주인공은 조선 중기 서얼 출신 지식인인 신무(愼懋, 1629~1703)란 분입니다. 만호(晩湖)는 그의 호입니다. 성호 이익의 글을 통해 신무의 평소 생명 사랑과 그가 지향한 바가 어떠한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의 인물됨과 좌우명에 관한 내용은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선구자인 이익(李瀷, 1681~1763)의 <신씨가숙연원서(愼氏家塾淵源序)>와 <만호신선생전(晩湖愼先生傳)>에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비록 그가 서출이지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고 평소 배운 것을 직접 실천하는 일을 으뜸으로 삼아 주변의 신망이 높았다는 점, 그의 나이 70세에도 불구하고 강원도 고성에 과일이 드문 것을 알고 과실의 씨를 들고 가서 직접 심었다는 점입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고, 나에게 이로운지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吾爲其當爲 不念利己者也(오위기당위 불념리기자)]”는 그의 좌우명입니다. 비록 과실을 심고 비록 5년 뒤에 생을 마감하였지만 죽는 날까지 백성들의 삶, 우주 삼라만상, 뒷세대와의 연결과 안배를 고민하고 실천하려는 의지는 지금도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됨은 물론 따스한 향으로, 잔잔한 바람과 파도로 전해져 옴을 느낍니다.
일찍이 공자는 “사람이 멀리 바라봄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데 걱정거리가 있게 마련이다[人無遠慮 必有近憂(인무원려 필유근우)]”고 하였습니다.
사람과 미물, 뭇 생명 지닌 것들에 대한 애정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역과 세계에 대한 안배이자 후손의 삶을 걱정하는 원려(遠慮, 원대한 생각)입니다. 신무는 몸소 생명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실천했다는 점에서 그의 언행과 고귀한 인품은 오늘날에도 잔잔한 울림과 감동을 전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