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일
蓋天地(개천지) 대개 하늘과 땅이
所生財貨百物(소생재화백물) 생산하는 모든 재화와 만물은
各有限劑(각유한제) 각기 정해진 분량이 있어
不可妄費(불가망비) 함부로 써버려서는 안된다네
苟不節用(구불절용) 참으로 아껴 쓰지 않기를
如焚藪獵禽(여분수렵금) 마치 숲에 불을 질러 새를 사냥하듯
竭澤取魚(갈택취어) 못물을 말려 물고기를 마구 잡듯 한다면
坐見窮瘁(좌견궁췌) 결국 삼라만상이 곤궁하게 되어
而莫之贍矣(이막지섬의) 공멸(共滅, 함께 사라짐)에 이르게 된다네
- 김시습(金時習. 1435~1493)<재화를 불리는 길에 대하여[생재설[生財說]>
이 곳 교육원은 일찌감치 방학에 들어가다보니 사람도 느슨해집니다. 지난 주말 부산 광안리 앞바다에서 진행하는 드론쇼를 아내와 아이와 함께 보고 왔습니다. 겨울밤, 크리스마스 전, 밤바다, 파도, 불빛 등은 사람을 유혹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아이와 함께 모래사장을 거닐며 다음 해의 꿈들에 대해서 얘기 나누는 귀한 시간도 함께 가졌습니다.
연말이라 교육원에 출근하지 않고 연달아 연가를 써도 되긴 하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 커질까 그리고 저 자신도 여기에서의 한 해의 끝을 잘마무리하고자 어제 저녁에 입교하였습니다. 연이은 휴가에 일년간 교육원에 적응되었던 몸이 집에서 계속 휴식을 취하라는 신호를 줍니다. 하마터면 오늘 출근하는 일을 어제 저녁에 잠시 잊곤 하였습니다.
아내의 재테크가 뜻대로 되지 않아 함께 고민도 했지만 고민한다고 답이 딱히 떨어지는 건 아닙니다. 시간을 요하고 인연을 기다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김시습은 "우주 만물을 사랑하는 방법[애물(愛物)]은 아껴 쓰는 데[절용(節用)] 있다."고 말합니다. 풀숲에 불을 질러 뭇 생명의 목숨을 함부로 거두고 못물을 말려 물고기를 마구 취하는 행동은 인류가 추구해야 할 고귀한 가치인 사랑과 친절, 연민과 자비에 어긋나게 됩니다. 산을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땅과 바다에서 기름과 가스를 함부로 캐내는 일 또한 인간을 포함한 뭇생명을 스스로 해치는 일이 되고 맙니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신성(神性)과 영성(靈性)이 깃들어야 합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한 채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다가는 나와 이웃, 자연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친절(親切)은 우리가 서로 같다는 동류의식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친밀하고 절실한 관계입니다. 나와 부모, 누나, 형, 동생이라는 친밀감과 애정이 있다면 자연을, 물고기를, 사람을, 땅을, 새를, 식물을, 꽃을, 나무를, 산을, 냇물을, 바다를 함부로 대하거나 해코지하며 취하진 않겠지요.
나를 돌보듯 이웃과 사회, 삼라만상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내 누이와 내 형제를 살피듯 이 땅의 모든 생명붙이들을 사랑하고 아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애물(愛物, 만물을 사랑)하고 애인(愛人, 사람을 사랑)하는 길이며 지구공동체가 공존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오늘 하루도 지구 공동체 나아가 우주 삼라만상을 대함에 있어 삼가고 삼가며 미안하고 미안해하는 생명 사랑의 마음을 가슴 속 깊이 품고 베풀며 실천하는 값진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