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비, 10대와 생태적 삶을 노래하다
一間茅屋倚山岡(일간모옥의산강) 언덕에 기댄 초가집 한 칸
場畔翁姑語正長(장반옹고어정장) 마당 한 켠에선 노부부의 이야기가 한창
未解平生榮爵祿(미해평생영작록) 벼슬이 영예인 줄 평생 모르고
只誇卒歲富農桑(지과졸세부농상) 한 해 농사 잘된 것만 자랑이라오
溪橋日晚牛羊下(계교일만우양하) 시냇물 다리 위로 해 떨어지니 소들이 돌아오고
秋壟風高禾秫香(추롱풍고화출향) 가을 언덕에 바람 높아 벼 냄새 향기롭네
待得兒童沽白酒(대득아동고백주) 아이놈 술 사오길 기다렸다가
旋炊菰飯喚人嘗(선취고반환인상) 밥 짓고 사람들 불러 함께 마시네
-김시습, <전가즉사(田家卽事)>
이번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김시습의 <시골 풍경>을 묘사한 시를 함께 공부하고자 합니다. 1, 2구를 보면 우리 농촌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나요? 높은 지위와 명예는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땅을 바라보고 일구며 한평생 살아오신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석양을 배경 위로 목동과 함께 소들이 돌아오는 모습, 가을 언덕 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리며 풍기는 벼 내음, 이 모든 풍경을 그림으로 나타내어도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지 않을까요?
우리 선조들은 수확의 기쁨을 혼자 나누지 않고 이웃을 불러 함께 나눌 줄 아는 가난하지만 온정이 담긴 삶을 담고 누릴 줄 알았습니다.
“벼슬이 영예인 줄 모르고/한 해 농사 잘된 것만 자랑이라오”라는 시구에서 세속적인 성공과 명예욕은 이들 시골 노부부의 삶에서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농부의 하루의 근심이자 평생의 근심은 오직 ‘농사가 잘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려 중기 문인 이규보는 국가나 의사가 대신할 수 없는 굶주린 백성을 살리는 사람은 오직 농부뿐이며 그를 부처님처럼 공경한다고 <햅쌀의 노래[신곡행(新穀行)>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농사라는 것이 사람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지요. 하늘에서는 비와 구름과 바람이, 땅에서는 사람과 곤충과 풀벌레와 지렁이, 흙 속의 수많은 미생물들이 함께 자연의 순리에 따라 온힘을 기울어야지만 낟알과 각종 열매와 채소를 수확할 수가 있습니다.
자연의 이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농부가 어찌 권력을 탐하고 명예를 추구하며 다른 사람을 밟고 내가 잘 되려고 하는 마음을 품을 수가 있겠는지요?
시냇물 다리 위로 해 떨어지자 소들이 돌아오는 시각적 풍경, 가을 언덕 위로 불어오는 바람이 전하는 벼 냄새의 향기는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할 정도로 그 묘사가 뛰어나고 우리의 온 감각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아파트와 빌딩숲, 도로와 자동차 경적 소리, 매연으로 둘러쌓인 도시 생활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전원의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이들 풍경을 통해 우리 내면의 영성을 살찌우고 자연 앞에 겸손함을 배우게 되는 것이겠지요
맹자는 여민락(與民樂)이라고 해서 좋은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길 줄 아는 선한 본성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시골의 살림살이 비록 넉넉하지 않지만 우리 선조들은 추수(가을걷이) 후 남은 곡식으로 술을 빚고 땅에서 나는 각종 곡물과 야채, 과일 등으로 나눌 줄 아는 여유와 풍류를 지녔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정성은 크며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나눔과 봉사, 환대(歡待:기쁘게 맞이함)의 정신이야 말로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생태적 지혜이자 덕목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흙을 매만지고 북돋우며 가만히 얼굴에 대어보는 행동은 친밀감의 표현이자 내면을 어루만지는 숭고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흙에서 자연에서 그리고 지구 생명공동체에서 멀어지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행하고 있다면 이 시를 계기로 우리 자신을 한 번 더 되돌아보고 흙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성찰해 봤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10대 생각
· 엎드린 밭두렁 강아지풀 살랑살랑
노랗게 물든 벼 시골 냄새
바람 타고 전해 오네
· 논에서는 바람이 선선히 불고
구수한 향이 골목마다 피어나네
얼굴 서로 나누어 익히 알고 있고
부족할지라도 웃으며 농사 애기 나누네
· 본디 사람이라면 지위와 명예, 돈을 탐낼 수 있을 텐데 그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한 해 농사 자랑만 한다니 놀라웠다. 고소한 곡물 냄새 맡으며 소곤소곤 이야기 나누는 분위기가 참 부러웠다. 또 나눠 먹는 밥상은 요즘 시대에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라 더 부럽기도 했다.
· 내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눌 줄 알면 내가 받는 기쁨과 행복이 두 배가 된다고 생각한다.
·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이웃과 나누고 사시는 모습을 늘 봐왔는데 그녀의 삶을 통해 나누고 사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되어 감사하다.
· 시골 하면 사람들 간에 정이 많고 따스한 모습이 떠오른다. 시골 마을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오지 않으므로 재산 다툼이 적고 남에게 베푸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 높은 자리나 돈은 외면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지만 온정과 행복은 내면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내면을 가꿀 줄 알게 되면 언젠가 외면도 함께 풍요로워질 것 같다.
· 나눔의 실천은 하나가 둘로 둘은 셋으로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함께 할수록 좋은 것 같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다 보면 서로에게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거라 생각한다.
· 시골 마을의 풍경은 시끄러운 차소리와 미세먼지 없이 깨끗한 하늘에 살랑살랑 벼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평화로운 모습일 것 같다.
·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논밭에서 일하시는 모습, 바람이 불 때 산에 있는 나무와 마을을 지키고 있는 나무들이 흔들리는 풍경이 떠오른다.
· 내가 생각하는 시골 풍경은 풀과 꽃이 넓게 펼쳐져 있고 아이들이 반바지, 반팔 차림으로 흙을 만지며 평화로이 놀고 있는 모습이다.
· 함께 즐길 수 있는 이웃과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시골이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 내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며 함께 누려야 하는 이유는 나눌수록 기쁨이 배가 되기 때문이다. 나의 내면에 잠재돼 있는 시골 마을의 풍경은 맑은 하늘과 순수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다.
♣ 나를 돌아보는 물음
1. 내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고 함께 누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여러분의 내면에 잠재돼 있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풍경은 어떤 모습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