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일
達亦不爲懽(달역불위환) 현달한다고 기뻐할 것 없고
窮亦不爲戚(궁역불위척) 가난하다고 걱정할 것 없지
悠悠窮達間(유유궁달간) 현달과 가난 그 사이에
伊我無變易(이아무변역) 나는야 달라질 것 없네
生亦不加存(생역불가존) 산다고 뭘 더 얻는 것 없고
死亦不加亡(사역불가망) 죽는다고 뭘 더 잃는 것 없지
茫茫生死際(망망생사제) 아득한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伊我無慶傷(이아무경상) 나는야 기쁘거나 슬프지 않네
薪盡火自傳(신진화자전) 장작은 타 버려도 불길은 이어지리니
至人通大方(지인통대방) 통달한 사람만이 그 이치 알리
- 신흠(申欽, 1566~1628), <후십구수(後十九首)> 중 십오수(十五首)
연일 무더위의 연속입니다. 며칠 전 잠시 빗님이 오시긴 했으나 속수무책입니다. 생명에게 있어 여름은 여름다움이 필요하지만 찌는 듯한 더위가 앞으로 두어 달은 더 지속될 것이니 벌써부터 겁이납니다. 늘 건강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세계 헌혈자의 날이자 음력으론 5월 9일 상현(上弦)을 지나고 있습니다. 곧 여름의 중간지점은 5월의 보름을 볼 수 있겠지요. 여전히 모기님에게 얼굴이며 손등, 팔, 발뒤꿈치, 종아리, 허벅지 등을 열심히 내어주고 있습니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눈먼 지렁이가 뙤약별 아래 슬금슬금 나왔다 건너편 풀숲으로 채 이동을 다하지 못한 상태에서 익사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어 마음이 아픕니다. 그나마 살아 있는 것은 손으로 집어 풀숲으로 넘겨주기도 하나 열에 아홉은 형언할 수 없는 뜨거움으로 목숨을 잃게 되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부디 다음 세상에선 사람으로 꼭 태어나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름이 알려지고 사물의 이치를 훤히 꿰뚫어 볼 수 있다고 해서 기뻐할 것도 없고 가난을 인식하는 한 언제나 가난한 것은 아니니 걱정할 것 없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마치 지나친 기쁨과 한때의 어려움에 마음을 업다운할 게 아니라 중용(中庸)과 평정심을 늘 유지하란 뜻인 것 같습니다.
오래 산다고 해서 더 얻을 것도 조금 일찍 죽는다고 해서 더 잃을 것도 없다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장작은 다 타 버려도 불은 어느 곳에나 존재하듯 우리의 육신이 사라져도 새, 나무, 풀, 바람, 물, 바위, 꽃, 흙, 미생물, 들짐승, 날짐승으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며 삶과 생명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그러니 나고 죽음에 연연하지 않으며 우주 대자연의 큰 흐름에 저 스스로를 크게 내맡길 수 있는 빛나는 용기와 지혜를 주시길 오늘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