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일
似夢非夢人間世(사몽비몽인간세) 꿈인 듯 꿈 아닌 듯 우리네 세상
不醉而醉人間人(불취이취인간세) 취하지 않았어도 취한 게 우리네 인간
醉兮夢兮誰是眞(취혜몽혜수시진) 취했는지 꿈일는지 참됨은 무엇인지
- 신흠(申欽, 1566~1628), <잡언 3구> 중 제3수
계속 이어지던 한낮의 더위를 식혀주는 단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웬일인지 대낮에 집 옆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단비는 개구리도 즐겁게 합니다. 지렁이 친구들도 질세라 흠뻑 샤워를 즐깁니다. 비 오는 날은 사람이 다니기 번거롭기에 인적 드문 산림에 은거하는 만물에게 잔칫날이 되어줍니다.
오늘 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늘 그렇듯 산책 삼아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왔습니다. 분홍빛 별을 닮은 장미과의 덩굴성 관목(灌木)인 홍동가시나무 군락에 눈이 팔려 고개 들어 쳐다보지 않았으면 가시나무 위에 수줍은 듯 겸손하게 피어 있는 다홍빛 능소화를 눈에서 ‘놓칠 뻔했다’고 생각하니 그것이 더욱 반갑고 살갑게 느껴졌습니다. 여름 또한 봄 못지않은 다채로운 꽃들로 생명을 향유하며 빛나는 한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음력 5월 3일(양력 6월 8일)로 24절기 중 9번째 절기인 양력 6월 6일 망종(芒種, 모내기와 보리 베기에 적합한 때)을 갓 지난 날입니다. 양력으론 한 해의 절반이 지났으나 이십사절기로는 삼분의 일이 갓 지난 시기이기도 합니다.
논과 밭, 나무와 꽃, 그리고 흙을 바라보며 까끄라기, 보리와 벼, 게, 거머리, 우렁이, 반딧불이, 메뚜기, 소금쟁이, 잠자리, 꿀벌, 지렁이, 논과 밭, 흙, 물방게, 매미, 제비, 두루미, 왜가리, 수달 등 각종 동식물의 서식지와 생태 다양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도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갈텐데’ 제 집인 지구별을 왜 이렇게 어지럽히며 못살게 구는 걸까요? 불을 보고 저 죽을 줄 모르며 달려드는 나방처럼 말입니다.
내 몸이 아파봐야 다른 사람의 아픈 심정을 이해하듯 어머니인 흙과 지구, 강과 바다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꿈인 듯 꿈 아닌 듯/취한 듯 취하지 않은 듯한 헷갈리는 위기의 세상 속에서 인류의 자멸과 공멸을 넘어설 대안은 나를 돌보듯 삼라만상의 생명을 돌보고 살리는 일이 ‘참된 길’임을 사백 년 전 신흠이 내다보았듯 우리는 잠시라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