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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 Jun 23. 2024

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115일


 人生得意不得意(인생득의부득의) 인생사 뜻을 얻기도 못 얻기도 해

 世事一是還一非(세사일시환일비) 세상사 하나 옳으면 하나는 틀려

 且可付之無何有(차가부지무하유) 이치 이러하니 삼라만상에 맡길까

 誰能識此希夷微(수능식차희이미) 오묘한 이 이치 누가 알까

- 신흠(申欽, 1566~1628), <멋로 노래하다[방가(放歌)]>     


 어제 내린 비로 아침저녁은 제법 선선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곧 있을 기말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제 곧 한 달 뒤면 방학에 접어드니 학교와 아이들, 교원, 교정(校庭)도 쉬어갈 여유를 가지게 됩니다.     


 지난 주말 같은 지역 교원의 단합을 위한 배구 경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전에 근무했던 친정과 같은 학교여서 편안한 마음으로 들렀습니다. 반가운 얼굴로 예전 함께 근무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환담을 잠시나마 나눌 수 있어 기뻤습니다. 저는 후반전에 교장선생님을 대신할 선수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1세트는 엎치락뒤치락 끝에 저희가 가져온 상태였고 2세트가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친정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서브를 7개를 넣었는데 모두 다 성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태껏 이런 일은 없었는데 말입니다. 8번째 서브가 라인을 벗어나 연속 득점은 그치고 말았습니다. 친정 학교에 교원들에게 감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공존하였고 이겨도 이긴 티를 잘 내지 못하고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려 애를 썼습니다.     


 친정 학교는 제가 2020년과 2021년에 근무하면서 당시 교장 선생님의 은혜를 입어 중책을 맡게 된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학교가 많이 어수선할 때였습니다. 이제 와서 당시를 돌아보고 현재 주변 또래 선생님들이 승진하여 득의한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이분들의 그간 수고와 노력에 대한 찬사를 보냄과 동시에 ‘나는 여태껏 뭐했나’ 하는 마음이 울컥 올라와서 요 며칠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음을 고백합니다.     


 자녀 교육과 승진 준비의 길목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였고 때로는 아내의 수고하는 마음을 공감하며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속으로 내리기도 한 지나온 세월이 문득 떠오르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합니다.    

  

 오십이 되면 인생사를 물 흐르듯 관망하며 뜻을 이룬 모습들을 ‘희이미(希夷微)’하게나마 그려왔는데 한 고개 넘으니 또 한 고개가 다시 툭 튀어나옵니다. 마치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가 저를 감싼 것 같아 조증(躁症:조급하게 구는 성질이나 버릇)이 수시로 올라오곤 하니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멀었나 봅니다.     


 한숨 한숨 길게 내뱉으며 하루하루를 다시 돌아봐야겠습니다. 조금씩 고개를 들고 올라오는 이기적인 욕망과 에너지를 잘 되돌려 저 풀 한 포기, 찌르레기, 귀뚜라미와 소신공양(燒身供養: 자기 몸을 불살라 만물의 먹이가 됨)하는 지렁이의 마음으로 다시 바닥부터 기어야겠습니다. 오늘은 별도 달도 보이지 않는 희미한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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