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일
田園歸計晩(전원귀계만) 전원에 돌아갈 계획 늦어지니
慚愧晉淵明(참괴진연명) *도연명에게 부끄럽구나
環顧六尺身(환고육척신) 주위를 둘러봐도 작은 이 한 몸뿐
一日能幾食(일일능기식) 하루에 얼마나 먹는단 말인가
尙營口腹謀(상영구복모) 그런데도 생업에 치여
未去雲山碧(미거운산벽) 구름 낀 푸른 산으로 떠나지 못하네
-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문득 읊으며[우음(偶吟)]>
* 도연명(陶淵明, 365~427) : 연명은 육조(六朝) 시대 진(晉) 나라 도잠(陶潛)의 자(字). 그는 진 나라 말엽에 집이 가난하여 친구들의 권고로 팽택 영(彭澤令)이 된 지 80여 일 만에 호연히 벼슬을 버리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짓고서 전원(田園)으로 돌아왔다.(나무위키 2024. 5. 1.자 기사 참고)
장마 속에 살면서 장마인 줄 모르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음력 유월 둘째 날로 해는 가려 있으나 무척 습합니다. 한 달 뒤 팔월 칠일은 입추(立秋)입니다. 무더위가 언제 가나 하다가도 무더위 속에서 나름의 즐거움을 찾다 보니 곧 가을이 다가오려나 봅니다.
어딜 가나 구복(口腹:입과 배)이 문제인가 봅니다. 저도 가끔 처자가 딸리지 않았다면 홀로 유유히 공부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애쓰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얼마 전 생태철학자 최성각 시인의 《무정설법, 자연이 쓴 경전을 읽다》를 읽었습니다. 그는 “산에는 밤나무가 넘쳐나는데 이 밤만 주워 먹거리로 삼아도 앞으로의 식량 위기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라는 탁견을 듣고는 감탄하였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인류의 수가 100억을 거뜬히 넘긴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구 마을에서 실천할 일은 미식(美食:맛있는 음식)이 아닌 최소한의 음식[소식(素食)]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영성가인 틱낫한 스님은 바쁜 현대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습니다.
산길을 따라 푸르고 싱싱한 나무들과 멋진 바위들이 많았어
하지만 나는 잠시 멈춰 그 모습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단다
어서 빨리 산꼭대기에 닿고 싶었기 때문이지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스쳐 지나면서 나는 그저 뛰기만 했어
머리 위에서 빛나는 하늘도 쳐다보지 않은 채
그저 뛰고 또 걷기만 한 게야
- 《틱낫한 스님이 들려주는 마음 속의 샘물》 중에서
식사도 빨리
일 처리도 빨리
학원 차 기다리니 빨리
숙제나 과제, 과업도 얼른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더 많이 더 빨리 더 오래
차는 커야
집은 넓어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꽉 짜여진 스케줄에 맞춰
톱니바퀴처럼 우리 몸을
쉼 없이 굴러야
겨우 밥 한술
잠깐 뜰 수 있으니
아이고 어른이고
언제 멈추고
언제 쉴까(자작시)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이제는 더디더라도 천천히 가고 침묵을 즐기며 주위를 살피며 직선이 아닌 곡선의 다양성을 찾아가야 할 때입니다. 외양의 거대함과 화려함이 아닌 내면의 소박함, 참됨에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