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은 Jul 07. 2024

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117일


 田園歸計晩(전원귀계만전원에 돌아갈 계획 늦어지니

 慚愧晉淵明(참괴진연명*도연명에게 부끄럽구나

 環顧六尺身(환고육척신주위를 둘러봐도 작은 이 한 몸뿐

 一日能幾食(일일능기식하루에 얼마나 먹는단 말인가

 尙營口腹謀(상영구복모그런데도 생업에 치여

 未去雲山碧(미거운산벽구름 낀 푸른 산으로 떠나지 못하네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문득 읊으며[우음(偶吟)]>     


 * 도연명(陶淵明, 365~427) : 연명은 육조(六朝) 시대 진(晉) 나라 도잠(陶潛)의 자(字). 그는 진 나라 말엽에 집이 가난하여 친구들의 권고로 팽택 영(彭澤令)이 된 지 80여 일 만에 호연히 벼슬을 버리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짓고서 전원(田園)으로 돌아왔다.(나무위키 2024. 5. 1.자 기사 참고)     


 장마 속에 살면서 장마인 줄 모르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음력 유월 둘째 날로 해는 가려 있으나 무척 습합니다. 한 달 뒤 팔월 칠일은 입추(立秋)입니다. 무더위가 언제 가나 하다가도 무더위 속에서 나름의 즐거움을 찾다 보니 곧 가을이 다가오려나 봅니다.      


 어딜 가나 구복(口腹:입과 배)이 문제인가 봅니다. 저도 가끔 처자가 딸리지 않았다면 홀로 유유히 공부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애쓰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얼마 전 생태철학자 최성각 시인의 《무정설법, 자연이 쓴 경전을 읽다》를 읽었습니다. 그는 “산에는 밤나무가 넘쳐나는데 이 밤만 주워 먹거리로 삼아도 앞으로의 식량 위기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라는 탁견을 듣고는 감탄하였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인류의 수가 100억을 거뜬히 넘긴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구 마을에서 실천할 일은 미식(美食:맛있는 음식)이 아닌 최소한의 음식[소식(素食)]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영성가인 틱낫한 스님은 바쁜 현대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습니다.     


 산길을 따라 푸르고 싱싱한 나무들과 멋진 바위들이 많았어

 하지만 나는 잠시 멈춰 그 모습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단다

 어서 빨리 산꼭대기에 닿고 싶었기 때문이지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스쳐 지나면서 나는 그저 뛰기만 했어

 머리 위에서 빛나는 하늘도 쳐다보지 않은 채

 그저 뛰고 또 걷기만 한 게야

 - 《틱낫한 스님이 들려주는 마음 속의 샘물》 중에서     


 식사도 빨리

 일 처리도 빨리

 학원 차 기다리니 빨리

 숙제나 과제, 과업도 얼른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더 많이 더 빨리 더 오래


 차는 커야 

 집은 넓어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꽉 짜여진 스케줄에 맞춰

 톱니바퀴처럼 우리 몸을

 쉼 없이 굴러야


 겨우 밥 한술 

 잠깐 뜰 수 있으니


 아이고 어른이고

 언제 멈추고 

 언제 쉴까(자작시)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이제는 더디더라도 천천히 가고 침묵을 즐기며 주위를 살피며 직선이 아닌 곡선의 다양성을 찾아가야 할 때입니다. 외양의 거대함과 화려함이 아닌 내면의 소박함, 참됨에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