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일
病不讀書今一年(병부독서금일년) 병들어 책 놓은 지 어느새 일년
枯腸枵腹只酣眠(고창효복지감면) 뱃속 비우고 잠만 즐기네
松簷陰下麥風過(송첨음하맥풍과) 소나무 처마 그늘 아래 보리 바람 스치고
臥看村南村北煙(와간촌남촌북연) 남촌 북촌 뿌연 안개 누워서 바라보네
- 장유(張維, 1509 ~ 1638), <병들어 읊네[병음(病吟)]>
작년 파견 생활로 몸이 단단히 다져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지난 목요일 의령 체험 학습 사전 연수, 주말에 아이들 지필 평가 채점, 월요일 에 사제동행 체험학습을 치러냈더니 고뿔이 오고 말았습니다. 예년 같으면 내과 가서 주사 한 대 맞고 땀을 푹 내면 낫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감기는 예년의 패턴과 다르게 하루 괜찮았다가 이튿날 다시 상태가 좋지 않아 결국 수액(輸液)을 맞는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체험이 주말이면 쉬기라도 했을텐데 월요일부터 체험활동을 하게 되니 몸살 기운에 기침에 아내와 아이, 동료 교사 눈치 보느라 몸은 몸대로 정신은 정신대로 지치고 힘이 많이 들어 일주일이 마치 한 달이 지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수액을 맞으면서 문득 저도 ‘하나의 나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와 식물이 시름시름 앓으면 흙 속에 수액(樹液)을 공급하듯 제 혈관에 주사바늘을 넣어 연명(延命)한다는 점에서 연민(憐憫)을 느꼈습니다.
제 몸 아파봐야
남의 생명 소중함을 알고
앓아누워 있어봐야
두발로 걸어 다닐 수 있음이
새삼 기적임을 알겠네
꼬박 이삼일을 앓으며 누워 있어 보니 사람과 풍경이 새로이 다가옵니다. 도서관 가는 기찻길 옆 소담길에 작은 마가렛 친구들, 노란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반깁니다. 머언산 구름 걷히니 정신이 또렷해지기도 합니다. 흰나비, 호랑나비가 나들이하는 모습, 그리고 산새 소리는 덤입니다.
무엇하러 스스로를 꽁꽁 얽어매었을까요? 천지간의 유무정물(有無情物)에게 좀 더 관대해지고 친절하란 뜻으로 요며칠간의 병중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오늘밤 유월의 초승달이 유난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