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은 Jul 20. 2024

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119일


 澗水之濱斜掩扉(간수지빈사엄비시냇가 비스듬히 삽짝 닫은 집

 滿庭晨露栗花(만정최로율화뜰 가득 새벽이슬 밤나무 꽃 드문드문

 客來問我無心否(객래문아무심부객 와서 내 마음 궁금해하면

 笑指東林雲自(소지동웅림운자웃으며 동편 숲 저 구름 가리키네

 이덕무(李德懋, 1741~1793), <동쪽 벽에 쓰다[어동벽제료(於東壁題了)]>     

 

 어제 새벽 내린 비로 

 머언 산

 목욕 갓 마친 듯 

 청람(晴嵐: 비 갠 뒤 아른거리는 아지랑이) 타월을 둘러 있네     


 노란빛 해맑은 해바라기

 짝짓기 하는 고추잠자리  

 분홍빛 어성초 하늘하늘

 짙은 주홍빛 코스모스 간들간들    

 

 가을이 성큼 다가옴을

 만물이 몸으로 

 노래하네     


 오늘은 음력 유월 기망(旣望)입니다. 이틀 전 내린 비로 허리춤에 구름을 두른 만월 전 보름달이 밝은 기운을 내뿜는 모습을 보며 삼라만상의 여여(如如: 차별을 떠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 모든 현상의 본성)함을 떠올렸습니다.     


 한 번 몸살을 앓고 나니 몸가짐 하나, 마음가짐 하나에도 괜스레 신경이 쓰입니다. 혹시 큰 병이 오지 않을까 두렵기도 합니다. 힘을 줘야 할 때와 빼야 할 때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저의 어리석음과 오만, 그리고 자만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천지 삼라만상은 저렇게 힘을 빼고 자신의 온전함을 자연스레 드러내고 있는데 저는 어떤 미혹(迷惑)과 미망(迷妄)에 사로잡혀 저 자신 하나 제대로 추스르지도 텅 비워내지도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감기 증상은 거의 회복했는데도 요 며칠 누워있으면 머리가 빙그르르 어지러웠습니다. 어떤 번뇌와 잡다한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일까요? 한 생각 놓아버리면 자유로운 것을 무엇 하러 붙들고 있었던 것일까요?     


 말로는 무심(無心)과 무위(無爲)를 외쳐왔지만 정작 기심(欺心:자신을 속이는 마음)과 유위(有爲: 다분한 의도를 가진 행위)에 젖어들어 생명을 길러내는 저 밤나무만도 못한 삶을 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저 흘러가는 구름 바라보며 

 들숨과 날숨 

 하나하나 세어보네      


 옛 선현 말씀하신

 구방심(救放心놓쳐버린 마음을 회복함)

 참 의미

     

 보름달 바라보며

 무심히

 품어보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