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일
澗水之濱斜掩扉(간수지빈사엄비) 시냇가 비스듬히 삽짝 닫은 집
滿庭晨露栗花稀(만정최로율화희) 뜰 가득 새벽이슬 밤나무 꽃 드문드문
客來問我無心否(객래문아무심부) 객 와서 내 마음 궁금해하면
笑指東林雲自飛(소지동웅림운자비) 웃으며 동편 숲 저 구름 가리키네
- 이덕무(李德懋, 1741~1793), <동쪽 벽에 쓰다[어동벽제료(於東壁題了)]>
어제 새벽 내린 비로
머언 산
목욕 갓 마친 듯
청람(晴嵐: 비 갠 뒤 아른거리는 아지랑이) 타월을 둘러 있네
노란빛 해맑은 해바라기
짝짓기 하는 고추잠자리
분홍빛 어성초 하늘하늘
짙은 주홍빛 코스모스 간들간들
가을이 성큼 다가옴을
만물이 몸으로
노래하네
오늘은 음력 유월 기망(旣望)입니다. 이틀 전 내린 비로 허리춤에 구름을 두른 만월 전 보름달이 밝은 기운을 내뿜는 모습을 보며 삼라만상의 여여(如如: 차별을 떠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 모든 현상의 본성)함을 떠올렸습니다.
한 번 몸살을 앓고 나니 몸가짐 하나, 마음가짐 하나에도 괜스레 신경이 쓰입니다. 혹시 큰 병이 오지 않을까 두렵기도 합니다. 힘을 줘야 할 때와 빼야 할 때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저의 어리석음과 오만, 그리고 자만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천지 삼라만상은 저렇게 힘을 빼고 자신의 온전함을 자연스레 드러내고 있는데 저는 어떤 미혹(迷惑)과 미망(迷妄)에 사로잡혀 저 자신 하나 제대로 추스르지도 텅 비워내지도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감기 증상은 거의 회복했는데도 요 며칠 누워있으면 머리가 빙그르르 어지러웠습니다. 어떤 번뇌와 잡다한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일까요? 한 생각 놓아버리면 자유로운 것을 무엇 하러 붙들고 있었던 것일까요?
말로는 무심(無心)과 무위(無爲)를 외쳐왔지만 정작 기심(欺心:자신을 속이는 마음)과 유위(有爲: 다분한 의도를 가진 행위)에 젖어들어 생명을 길러내는 저 밤나무만도 못한 삶을 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저 흘러가는 구름 바라보며
들숨과 날숨
하나하나 세어보네
옛 선현 말씀하신
구방심(救放心: 놓쳐버린 마음을 회복함)의
참 의미
보름달 바라보며
무심히
품어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