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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 Aug 11. 2024

사랑(仁愛)

영양과 교감하며


♣ 나를 돌아보는 물음     

1. 반려 동식물은 여러분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2~3가지 적어보세요.

2. 인공지능과 살아 있는 동식물과 교감하는 일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 자신의 생각을 적어보세요.


     



  어제오늘 간만에 모습을 드러낸 초승달이 반가웠습니다. 초저녁 하늘 명징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모습이 기품 있고 당당해 보여 좋았습니다. 어제가 칠석이었지요. 이제는 양의 기운은 줄고 음의 기운이 늘어나는 시기입니다. 삼복더위도 막바지로 향하고 더위도 내년을 기약하며 자신의 기운을 갈무리합니다.      


 우리 집 견공은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 가족의 순번을 정해놓았습니다. 아내가 1순위요 제가 2순위, 아들은 그저 만만한 상대입니다. 아내가 자리를 비우면 이 친구는 항상 저를 졸졸 따라다니며 어디 나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합니다. 그 마음을 잘 알기에 날씨에 상관없이 마트 가는 길, 산책길에 항상 동행을 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얘기 나눌 시는 김시습의 <영양과 교감하며>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그는 밤하늘의 별을 이불로, 땅을 침상으로, 천지 만물을 벗으로 삼은 길 위의 시인입니다. 지팡이 짚고 경사가 심한 벼랑길을 지나다 우연히 영양을 발견합니다. 영양이 볕 쬐는 모습, 그를 품은 자연의 자애로운 풍경, 그의 숨 쉬는 모습까지도 애정 어린 눈길로 세심히 관찰합니다. 마음에 드는 곳에서 마음에 드는 때에 마음에 흡족한 벗을 만난 냥 둘은 이내 서로의 경계를 풀고 교감하게 됩니다.       


 김시습은 체제 밖에서, 영양은 무리의 바깥에서 서로의 처지와 신분을 잊은 망형지교(忘形之交)를 쌓아갑니다. 폭포에서 함께 물 마시고 발을 담그며 어린아이마냥 좋아하기도 하고 서로의 이마를 맞대고 각자의 우주인 눈을 한참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둘은 전생에 마음이 통하는 절친이거나 부부이었나 봅니다. 이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추어버린 듯 몸은 자연에 있으되 정신은 시공을 초월하여 우주 속을 자유로이 노닙니다.    

  

 견공과 늘 산책하는 길에는 단풍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느티나무가 우거져 있어 삼복더위에도 시원한 그늘과 바람을 아낌없이 제공합니다. 말매미가 말 달리듯 쉬지 않고 울어대면 이에 뒤질세라 산새가 ‘도로록 띠디디디~’하며 협연을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도 자연스러워 함께 공연 다니는 듀엣처럼 느껴집니다. 산책길 옆 텃밭에는 농부가 흙을 고른 뒤 가을 씨앗 뿌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고개를 살짝 들어 단풍나무, 느티나무 사이를 거닐면 이들의 잎과 잎 사이로 수많은 별들이 수를 놓고 있어 한낮인데도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을 보는 것 같아 별천지를 소요하는 듯 마음이 편안하고 좋습니다. 이 모두가 사랑하는 견공과 함께라서 그 기쁨은 배가 됩니다.




 暉暉朝日暖(휘휘조일난)  환한 아침 햇살이 따뜻하여

 晴崖方煦嫗(청애방후구)  맑은 언덕이 그대로 할머니 품속 같네

 羚羊巧曝背(영양교폭배)  영양이 교묘하게 등을 쬐는데

 瞑目和噓煦(명목화허후)  눈감고 내쉬는 숨이 퍽도 부드럽네_

 怡暢四肢融(이창사지융)  기쁘고 상쾌하여 팔다리가 녹아날 듯

 自欣得佳遇(자흔득가우)  좋은 때 만난 걸 스스로 기뻐하네 

 洞深崖又險(동심애우험)  골 깊은데 언덕마저 험하여서

 妥帖不驚懼(타첩불경구)  마음에 흡족한 채 놀라움도 두려움도 없네

 我愛得其所(아수득기소)  그런 곳 만난 걸 내가 사랑하여

 徐徐撫其背(서서무기배)  슬슬 그 등을 어루만져 주었네

 初若乍驚愕(초약사경악)  처음엔 잠시동안 놀래는 것 같더니만

 漸馴與我伍(점순여아오)  점점 길들여져 나와 벗이 되었네

 嗅我舐我膚(취아지아부)  날 두고 냄새 맡고 살도 핥아 보더니

 抵額喜相對(저액희상대)  이마를 들이대면 기뻐 서로 마주보네

 汝亦羊外羊(여역양외양)  너 역시 양이 아닌 양이라지만

 我亦人外人(아역인외인)  나 또한 사람 밖의 사람이라네

 同是物外物(동시물외물)  다 같이 만물 밖의 만물이기에

 各保身外身(각보신외신)  제각기 몸 밖의 몸 보호하려니

 誰追汝歧路(수추여기로)  누가 너의 갈림길을 좇을 것이며

 誰訪我灝濱(수방아호빈)  누가 날 찾으리아득히 먼 곳을!

 汝角掛寒巖(여각괘한암)  네 뿔은 찬 바위에 걸어 놓고

 我冠彈松風(아관탄송풍)  내 갓은 솔바람에 튕겨지누나

 汝尾掉蒼苔(여미도창태)  네 꼬리는 푸른 이낄 흔들어대고

 我足漱飛潨(아족수비총)  내 발은 폭포수에 더러움 씻어내

 熙熙同負喧(희희동부훤)  기쁘고 정답게 함께 햇살쬐며

 共棲青山峯(공서청산봉)  청산 봉우리에 우리 같이 살자꾸나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영양(羚羊)이 맑은 언덕을 달려 볕을 쬐네[영양축청애이폭일(羚羊逐晴崖以曝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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