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꽃을 바라보며
淸晨纔罷浴(청신재파욕) 맑은 새벽 겨우 목욕 마치고
臨鏡力不持(임경력부지) 거울 앞에서 제 몸 가누지 못하네
天然無限美(천연무한미) 천연의 무한한 아름다움이란
摠在未粧時(총재미장시) 꾸미기 전에 있음을 알겠네
- 최해(崔瀣, 1287-1340), <연꽃을 바라보며[風荷(풍하)]>
어제저녁 제가 사는 곳 둘레에는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소낙비가 이십여 분간 지속되었습니다.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소낙비를 보고 맞아본 적이 참 오래전 일이라 어릴 적 생각도 나고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마치 온 세상이 일시 정지된 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기후 온난화로 우리나라도 이제는 아열대 기후인지라 무겁고 습한 대기가 더 이상 자신의 체중을 이겨내지 못하고 천둥과 함께 한 번에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쏟아냅니다.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벗인 햇빛이 말갛게 얼굴을 다시 내밉니다.
오늘은 차량 리콜 예약으로 인해 집 인근 카센터에 가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어 인근 구청 안 연못을 들러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분홍빛, 흰빛, 옅은 분홍빛, 진한 분홍빛, 중심은 분홍이되 위로 갈수록 흰빛인 연꽃과 반대로 중심은 하얗되 끝으로 갈수록 분홍빛인 연꽃, 개구리밥이 장관(壯觀)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목적지에 바로 들르지 않고 잠시 옆으로 샌 일이 눈과 귀, 마음의 크나큰 즐거움을 선사하였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적지만 바라보며 앞으로 내달릴 것이 아니라 때로는 옆으로도 새어 보고 에둘러 가보면 어떨까요? 혹시 알까요? 조물주가, 우주 삼라만상이 뜻하지 않게 준비해 놓은 사랑을 받아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를 테니 말입니다.
최근에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던 산업화 초기의 자동차는 그 형태가 직선형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나오는 차량은 유려(流麗, 물 흐르듯 고운)한 곡선을 띄고 있습니다. 나무, 달, 태양, 연못, 바다, 새, 곤충, 태아, 귀, 눈, 손가락, 척추, 골반, 신체 장기, 사람, 동식물, 바위 등 우주 삼라만상의 본디 모양은 원형이거나 곡선인가 봅니다.
우리 인간이 보기에 무질서하게 피어난 듯 보이는 연꽃 군락이 실은 조물주와 우주 지성의 크나큰 안배임을, 무한한 사랑과 조화로 펼쳐 놓은 것임을, 최해의 시로 재탄생하여 우리에게 원형적 직관과 태초의 아름다움을 전송해 줍니다.
♣ 나를 돌아보는 물음
1. 여러분은 연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연꽃에서 우리는 어떤 삶의 지혜를 길어 올릴 수 있을까요?
2. 곧장 나아가는 직선적인 삶과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고 에둘러가는 곡선적인 삶에 관해 여러분의 생각을 적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