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비, 10대와 농사를 노래하다
羡子明農志(선자명농지) 농사 이치 밝은 자네 부럽고 부러우이
孤筇日涉園(고죽일섭원) 막대 하나 짚고서는 날마다 동산을 거니네
野童驅雀卧(야동구작와) 들에선 아이놈이 누운 채로 새를 쫓고
溪叟趁魚喧(계수진어훤) 시내에선 늙은이가 고기를 쫓아 소리치네
牆栗跳紅殼(장율도홍각) 담장 옆 익은 밤은 붉은 껍질 벌어지고
畦菁抱紫根(휴정포자근) 채소밭 순무는 밑동 붉게 물들었네
朱朱擲紅粒(주주척홍립) 모이를 뿌리면서 쭈주 소리치며
霜旭招鷄孫(상욱초계손) 병아리를 부르는군 서리 내린 아침녘에
- 이덕무, 「밤에 조촌 지숙의 집에 가서 심계, 초정과 같이 짓다[야도조촌지숙가 동심계초정부(夜到潮邨智叔家 同心溪楚亭賦)] 3수 중에서]」
이 시는 1776년 가을 집안 조카 심계(心溪) 이광석(李光錫), 서얼들의 문학동호회인 백탑시파(白塔詩派)에 함께 몸담고 있는 벗인 초정(楚亭) 박제가와 함께 시골 친구의 집에서 읊은 노래입니다. 심계와 초정은 각각 이광석, 박제가의 호입니다. 호는 보통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이름을 따거나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호로 삼기도 합니다. 조촌에 사는 지숙은 누구인지 자세하지 않습니다.
첫 구는 ‘농사 이치 밝은 자네 부럽고 부러우이’로 시작합니다. 농사의 이치는 무엇일까요? 하늘과 별을 올려다보고 바람과 고개 숙여 땅의 냄새를 맡으며 매일매일의 기후를 예측합니다. 새벽같이 논이며 밭으로 달려가 오늘은 어떤 작물이 안색이 안 좋은지 어떤 거름을 더 주어야 할지 넘어지면 어떻게 바로 세워야 할지 등 할 일이 태산입니다.
이런 일들을 오래도록 능숙하게 큰 힘 들이지 않고 ‘막대 하나 짚고 날마다 농산을 거니는’ 벗을 보고 이덕무는 많이 부러웠던 모양입니다. 조금 오래된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지숙과 같은 분들이야말로 ‘농달(농사의 달인)’이며 그의 모습에서 삶의 여유와 부지런함을 엿보게 됩니다.
예부터 아이와 노인은 농촌의 주요한 일손이었습니다. 저의 고향은 경남 합천이지만 아쉽게도 도시에서 나고 자는 바람에 땔감을 구하러 산에 가거나 약초 캐러 다니거나 모내기, 벼 베기 등의 경험이 없습니다. 대학 시절에도 ‘농촌 일손 돕기’라고 해서 여름 방학 때 ‘농활(농촌활동)’을 가는 선후배님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진로에 대한 고민과 방황으로 그런 활동을 하지 못했던 게 마냥 아쉽습니다.
저희 아버님 세대만 해도 어릴 때 고향에 대한 추억이 많습니다. 어린 마음에 땔감을 구하기 위해 나무하러 가거나 소 풀 먹이기가 싫어 고향 마을 앞 나무 위에 올라가 시간을 보내고 놀았던 추억을 지난 추석 전 벌초하러 갔을 때 들었습니다.
어릴 적 시골에 있는 외가에 부모님, 동생과 함께 가서 커다란 눈망울을 하고는 ‘음메’하고 사람을 반기는 소의 울음소리와 부뚜막에서 이모할머님께서 장작을 떼어 밥을 지으시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냄새, 시골 동네를 수호신처럼 지켜주는 수령이 몇 백년된 고목나무 둘레에서 사촌들과 술래잡기 하며 뛰어놀던 일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새롭게 피어오릅니다.
마당에는 아이들과 함께 신이 나서 뛰놀던 누렁이와 ‘꼭꼭꼭’하며 울어대던 시골 장닭들, 외양간들의 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계곡에서 한 아이가 족대로 냇물의 길을 막으면 여러 명이서 피라미와 미꾸라지를 잡던 일들, 아이의 얼굴말한 돌을 뒤집어 가재와 고동을 잡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농업과 농민, 농촌은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며 산소가 있고 논밭과 과실수, 산과 계곡, 돌과 나무, 새와 온갖 산짐승과 식물들이 함께 사는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이 삼농(三農)이 무너진다면 속도와 편의 위주의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의 마음밭이 발붙일 곳이 있을까요?
기후 위기의 시대에 종의 다양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는 코로나가 인간에게 급속도로 확산된 이유로 종의 다양성 상실을 꼽고 있습니다. 과장된 얘기이긴 하지만 채소밭 순무가 붉게 익어가는 모습, 붉게 벌어진 잘 익은 밤과 석류, 버섯과 각종 약용 작물들, 호두나무, 노란 꽃잎을 자랑하는 호박꽃, 노란 나비, 흰 나비, 호랑나비, 채송화, 봉선화, 맨드라미, 자홍 빛, 흰빛, 주황 빛, 분홍 빛 등을 자랑하는 코스모스, 해바라기 등의 모습을 우리가 지켜나가고 보존해 나갈 수 있을지 두렵고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10대 생각
·부모님 세대는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추억이 많이 남아 있지만 현재 초, 중학생들은 매일 학원에 치여서 어린 시절 추억을 많이 남길 수 있는 기회가 없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농촌에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할머니 댁 밭에 잡초를 뽑는 일을 도와드리고 배추와 상추, 방울 토마토를 심고 재배해 봤다. 경작하고 재배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길러서 기분이 좋았고 잘 자라준 채소들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할머니를 도와드려서 뿌듯했다. 자연이 훼손되면 식량이 가장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농업, 농촌, 농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남 고성에 우리 가족들의 밭이 있는데 여기서 많은 과일들과 채소, 식물들을 길러보았다. 처음에 조그만 씨앗뿐이었는데 올 때마다 점점 커져 나가는 식물들을 보고선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또 지난 봄에 꽃들을 심었는데 이번에 갔을 때 핀 것을 보고 심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농업과 농촌, 농민을 아끼고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기후 변화와 지구온난화 때문에 농사 짓는 일이 많이 줄어들기도 하고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좀 더 정책적으로 배려해주고 아끼며 보호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골에서 할머니 일손을 거들었는데 덥고 짜증나고 귀찮았지만 땀 흘리며 일한 후에 먹는 식혜나 할머니표 된장찌개는 그 맛이 끝내줬다.
·시골의 아름다운 풍경을 생생히 알려주어 감사하다. 할머니가 집에서 감자, 파, 고추 등을 키우셨는데 할머니 댁에 갈 때면 항상 쪼르르 달려가서 구경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집에서도 이렇게 많은 식물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였고 할머니가 정성스럽게 키웠다는 걸 식물이 시들시들하지 않고 이쁘게 자라는 모습에서 잘 알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급식을 먹을 수 있고 소풍 갈 때 도시락을 쌀 수 있는 것도 농민들이 농작물을 키우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래서 농촌, 농민들을 더욱 아끼고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업과 농촌이 정말 중요하고 이것이 무너진다면 우리 생활에도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
·추석에 친할머니 댁에 가서 당신께서 키우시는 감나무, 포도나무, 고추를 보았다. 평소에는 쉽게 보지 못하는 밭이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절로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 동네가 더 좋은 것 같았다.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며 산소가 있고 논밭과 과실수, 산과 계곡, 돌과 나무, 새와 온갖 산짐승과 식물들이 함께 사는 생태계의 보고이기에 우리는 농업, 농촌, 농민을 아끼고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댁이 없어 일손을 도운 추억은 없지만 학교에서 현장체험학습을 갔을 때 농사일을 도운 적이 있다. 그때 옛날에는 이렇게 힘들게 농사를 지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농부님들에 대해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농업, 농촌, 농민들이 사라지게 된다면 점점 맛볼 수 없게 될 채소와 금값으로 변하게 될 채소가 많아지게 될 것이다. 기후 변화와 우리의 발전으로 인해 농촌이 없어지게 되고 노령화로 인해 농민들은 사라져만 갑니다.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 지금처럼 흘러간다면 미래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 나를 돌아보는 물음
1. 시골 할머니 댁에서 일손을 돕거나 시간을 보냈던 경험이나 추억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그때의 기분이나 감정은 어땠는지요?
2. 우리가 농업과 농촌, 농민을 아끼고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적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