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비, 10대와 성품을 노래하다
一夜新涼生(일야신량생) 서늘한 바람 새로 이는 밤
寒蛩入戶鳴(한공입호명) 귀뚜라미 문에 들어와 우네
野泉穿竹響(야천천죽향) 들녘의 샘물 소린 대숲 너머 들리고
村火隔林明(촌화격림명) 마을의 불빛은 숲 너머 밝네
山月三更吐(산월삼경토) 한밤중에 산봉우리 달 뱉어내고
江風十里淸(강풍십리청) 십리 길 강바람 맑기도 하지
玉宇雁群橫(옥우안군횡) 하늘가엔 기러기 떼 비껴 나누나
-이덕무(1741~1793, <추야음(秋夜吟)>
여러분은 ‘가을’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요? 저는 제일 ‘추석’, ‘보름달’, ‘추분’, ‘추수’ 등의 단어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새벽과 저녁에 우는 풀벌레 소리가 정겹고 한편으로는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다)의 계절이라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사람과 자연이 한 해 동안의 일을 성찰하고 자신을 비워나갈 준비를 하는 계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을이 되면 여태껏 살아온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선선해지고 추분 이후 밤이 길어지다 보니 따뜻한 봄, 무더운 여름과 다르게 생각이 참 많아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선현들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겠지요. 위 시 또한 ‘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고요한 저녁 문 앞의 귀뚜라미 소리, ‘들녘의 샘물 소리’가 밤을 배경으로 하여 더욱 선명하게 들려오며 제 마음 또한 더욱 차분해집니다.
시인의 시선이 집에서 들녘으로 숲에서 마을로 그리고 산과 하늘로 향하고 있습니다. 한방 중에 뜬 달은 또 얼마나 맑고 아름다운지요. 십 리 먼 길에서 불어오는 강바람 맞으며 저 멀리 기러기 떼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신비와 질서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까요? 우주 대자연의 극히 일부인 인간으로서의 역할과 할 일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가을밤입니다.
저희 집 위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해장사’라는 절이 하나 있고 장복산과 안민고개, 천자봉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나 있어 평일과 주말에 등산을 즐기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평일에는 주로 등산로까지는 올라가진 못하고 나트막한 동산 산책길을 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창원과 진해, 마산, 부산을 이어주는 제2 안민터널 공사로 인해 새로 난 길인데요. 낮에는 출퇴근 차량이 주로 이용을 하지만 저녁에는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아 한산합니다. 여분의 땅에는 과일나무며 코스모스, 들국화, 구절초, 배롱나무의 꽃들이 피어 있어 달빛을 조명삼아 한가히 걷는 이 길은 소소하지만 작은 기쁨을 선사합니다.
예전에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을 때는 혼자서 달빛을 보며 주변 사람들, 가족,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걷기도 하였고 지렁이가 포장된 도로에서 힘들어 하면 손으로 집어 넌지시 풀밭으로 옮겨 주기도 하였습니다.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터널 공사를 하기 전 원래부터 이곳에서 과수원을 꾸리시고 텃밭 농사를 짓는 몇몇 가구가 있었습니다. 요즘에도 주말이면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로 와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일손을 거들기도 합니다.
어느 날 산책로를 따라 길을 걷다가 현수막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면 아름답다, 너도 그렇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이 모두가 공짜인데 무슨 근심 걱정이 있으랴”라는 두 문구가 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손수 현수막을 만들어서 보여 주신 노부부의 마음씀씀이가 참 넉넉하고 보기 좋았습니다.
우리는 학업이면 학업, 직장이면 직장 일 등 땅을 일구지 않는 이상에야 자연의 소리를 너무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나의 목소리가 아닌 자연의 소리와 생명에의 공경과 존중,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경외, 경탄할 시간을 핸드폰과 TV를 쳐다보고 서로 잡담하느라 귀뚜라미 소리, 가을이 다가오는 소리,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나의 말을 멈추고 주변의 풍경과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일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을 때 우리 삶은 좀 더 풍성해지고 우리 내면은 가을밤처럼 고요히 성숙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10대 생각
· 평소 어두웠던 밤에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주위를 환하게 밝혀주는 느낌을 받았다. 가을하면 빠알간 단풍잎과 샛노란 은행잎을 도롯가에 가득 매달고 있는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생각난다. 흩날리는 낙엽들을 밟으면 바스락 소리가 나는 것이 참 듣기에 좋다. 이런 가을에는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도 스스로 괜찮다며 마음을 다스리며 보내려는 마음가짐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 이 시를 읽고 ‘하늘이 익어 노을이 지면/잘도 익은 벼들이 선선한 바람에 따라/산들산들 흔들리며 산새가 지저귀고/붉은 빛깔로 지는 노을을 지켜보는 허수아비가/그저 짧게 지나가는 가을을 지켜본다는 시를 떠올리게 되어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가을밤의 소리를 집중해서 귀 기울여 듣는 것처럼 내 주변에도 귀를 기울여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가을이 오는 밤이 기대되고 앞으로 나의 생각 또한 신중해지리라는 기대감이 들어 감사하다.
· 어젯밤에 잠이 안 와서 새벽에 멍을 때리고 있었는데 동물과 곤충, 바깥 바람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들려 마음이 차분해졌었다. 이 글도 그와 같은 마음이 들게 한다. 오늘 밤도 자신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 글을 읽고 찬찬히 내 손으로 베껴 쓰니 글 한 자 한 자가 뜻깊고 생생하게 느껴졌다. 또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도 같았다. 나도 이 글 속의 풍경에 서 있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요즘엔 이런 상황과 풍경이 있을 기회가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나만의 방법을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이면 가을밤처럼 맑은 마음과 기운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명상하기, 힐링이 되는 영상 보기, 등산, 산책하기 등을 실천하면 좋을 것 같다.
· 가을밤을 떠올리게 하고 밤에 한 번씩 창문을 열어 가을밤을 느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어 감사하다. 가을밤처럼 맑은 기운을 가지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삶에 성실해지고 오늘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진다.
· 가을밤의 선선하지만 따뜻한 느낌, 귀뚜라미 소리 등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 감사하다. 가을은 평화롭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 낙엽도 노랑색, 갈색, 붉은색으로 변하고 따뜻함과 선선함이 겹쳐 평화로운 느낌이 든다.
· 나는 가을하면 날씨가 선선해지고 밤이 길어지다 보니 다른 계절에 비해 잡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다. 가을밤처럼 맑은 기운을 품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며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고 생각한다.
♣ 나를 돌아보는 물음
1. 여러분은 ‘가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지요?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무엇인지요?
2. 가을밤처럼 맑은 기운을 품은 사람이 되기 위해 10대로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