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하나다

우리 선비, 10대와 성품을 노래하다

by 은은



萬物本一(만물본일) 만물은 본래 하나였는데

形分故礙(형분고애) 몸이 나누어지면서 서로 단절되었네

形礙於外(형애어외) 몸은 밖에서 단절되고

覺局於內(각국어내) 정신은 내부에 갇혀

則物我不相通(즉물아불상통) 나와 남이 서로 통하지 않게 되어

而私遂立焉(이사수립언) 마침내 이기심이 생겨났네

好惡相奪(호오상탈) 그리하여 좋고 싫음에 따라 서로 빼앗고

利害相攻(이해상공) 이익과 손해에 따라 서로 공격하여

爭以是滋(쟁이시자) 이 싸움이 번지고

亂以是起(난이시기) 혼란이 야기되었으니

此仁人之所惻也(차인인지소측야) 참 측은한 일이다.

勝私則(승사즉) 이기심을 극복하면

形不爲礙(형불위애) 몸이 장애물이 되지 않고

循理則(순리즉) 순리대로 하면

覺無所局(각무소국) 정신이 갇히지 않을 것이니

物猶我也(물유아야) 그러면 남이 내가 되어

我猶物也(아유물야) 내가 남이 되어

萬物一府(만물일부) 만물이 하나의 틀 안에 들어오고

死生同狀(사생동상) 삶과 죽음도 같은 것이 될 것이네

-장유(張維, 1587~1638), <방언(放言)>


여러분은 ‘만물과 내가 하나’라는 주장에 동의하는지요? 기후와 문명의 위기,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장유의 첫 문장은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풍깁니다. 세상과 소통하는 우리 몸은 외부와 통하질 못하고 나의 몸과 마음을 다루는 정신은 안으로 갇혀 있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우리의 몸과 정신은 왜 막히게 되었을까요? 몸과 정신이 막히고 통하지 않게 된다면 살아는 있되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몸과 정신을 자유롭게 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장유는 그 방법으로 개인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자연의 이치를 따르면 된다고 말합니다.

현대는 소통과 관심의 과잉 시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겁니다. 가족, 연인, 친구, 직장 동료와 함께 있어도 몸만 같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지 정신은 늘 스마트폰을 향하곤 합니다. 내가 올린 글이나 사진이 타인에게 ‘좋아요’, ‘추천’을 받지 못하면 왠지 모르게 소외된 것 같고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곤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침묵의 가치가 더 빛을 발휘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장유는 그의 침묵 예찬[默所銘(묵소명)]이란 글에서 침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온갖 묘함의 근원으로는

침묵만한 것이 없네

영악한 사람이 말할 때

소박한 사람은 침묵하고

조급한 사람이 말할 때

차분한 사람은 침묵하네

말하는 사람은 수고롭고

침묵하는 사람은 편안하며

말하는 사람은 헤프고

침묵하는 사람은 아끼며

말하는 사람은 다투고

침묵하는 사람은 여유가 있네


말을 많이 할 수 있지만 내면의 간소함과 소박함, 나의 덕을 키우고 정신을 기르는 데에는 침묵만한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어른인 법정 스님은 “말이 많아서 실수가 많지 말을 적게 해서 실수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라고 하며 생전에 침묵의 중요성에 대해 늘 강조하곤 하였습니다.


침묵할 수 있을 때만이 자기 내면이 소리와 우주가 들려주는 신비한 자연의 이치를 더욱더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습니다.


중국 송나라 시대의 사상가이자 신유학의 기초를 닦은 장재(張載, 1020 ~ 1077)는 자신의 자리 오른쪽에 새긴 글[〈서명(西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을 아버지라 칭하고 땅을 어머니라 부르니, 백성들은 나의 동포이고 사물은 나와 함께 하는 것들이다. [乾稱父, 坤稱母, 民吾同胞, 物吾與也(건칭부, 지칭모, 민여동포, 물오여야)]


우리가 하늘과 땅을 부모로 여기고 사람들과 우주 대자연을 나와 평생을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서 서로를 귀히 여겨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당시의 주류 사상인 ‘인간의 본성이 우주 자연의 이치’라고 주장한 주자학에 의문을 제기하며 ‘내 마음이 우주 자연의 이치’라며 마음의 중요성을 밝힌 명나라의 교육자이자 사상가인 왕양명(1472~1528)은 <대학문(大學問)>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대인(大人)이란 천지와 만물을 한 몸으로 여기는 사람이다[大人者 以天地萬物 爲一體者也(대인자 이천지만물 위일체자야)]


장유, 장재, 왕양명과 같은 사상가이자 내면의 달인들은 나와 타자(사람, 동식물, 자연 등)를 구분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정신이 자유로워질 때 우리는 좀 더 큰 나가 될 수 있고 우주 대자연과 한 몸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우주 대자연과 내가 하나인 상태가 될 수 있을 때라야 삶은 곧 죽음의 시작이며 죽음은 삶의 시작이라는 자연의 순리를 깨닫고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10대 생각


· 살아가면서 은혜를 베풀고 만물에게 덕을 쌓을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감사하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지게 되어 감사하다. 삶은 살아가는 동안 만물에 대해 은혜를 베풀며 덕을 쌓아가는 과정이며 죽음은 살아온 삶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 이 글을 읽고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항상 죽음이 두려웠는데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두려움이 덜해졌다.


· 만물과 나를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하고 이기심을 버려야 보다 큰 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

· ‘만물이 서로 하나’라는 뜻은 다른 사람, 다른 생명을 나처럼 소중하게 여기고 배려하라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인 것 같다.


· 모든 일에는 시작을 하면 끝이 있기에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죽음은 인생이라는 마라톤의 마지막 결승점이자 도착지라고 생각한다.

· 대자연과 하나가 될 때까지 하나의 삶이 끝나면 또 다른 삶이 나를 기다린다는 것을 알려줘서 감사하다.


· 하늘과 땅의 소중함을 느끼고 부모로 여기며 그것이 항상 나와 함께하고 나를 도와주고 지지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자연은 한 번 훼손되면 복구하기 어려우므로 내 몸과 같이 항상 그것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모든 만물은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가 먹는 음식 또한 자연에서 나와서 우리 몸에 흡수되어 나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만물은 나와 하나라고 생각한다.

· 이기심을 버리고 남을 생각하는 마음을 좀 더 넓히면 이익과 손해에 따라 서로 공격하지 않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정신이 자유로워질 때 우리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 만물이 서로 하나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우리는 항상 자연 속에서 살아가며 원래는 하나였으나 그것과 서로 통하지 않게 되어 분리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생각한다. 삶은 외면이고 죽음은 내면이라 본다면 사람들은 외면으로 보면 잘 살고 잘 먹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을 바라보면 삶에 지쳐 있어 죽음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만물과 서로 하나’라는 주장은 맞는 것 반 아닌 것 반인 것 같다. 왜냐하면 만물은 서로 떨어져 있고 각자 다른 생김새와 생각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나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만물이 서로 배려하고 희생해야 이 세계가 돌아간다는 걸 생각하면 하나인 것 같기도 하다.


♣ 나를 돌아보는 물음

1. ‘만물이 서로 하나’라는 생각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2.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주장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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