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13일

by 은은


此筆那輕擲(차필나경척) 이 붓 어찌 함부로 던져 버리랴

能成宰相身(능성재상신) 나를 국무총리로 만들어 주었는데

今吾頭亦禿(금오두역독) 이제 내 머리도 똑같이 벗겨졌으니

兩老合相親(양로합상친) 두 늙은이 서로 친하게 지내면 되겠네

- 이규보(李奎報, 1168-1241), <오래된 붓을 두고 재미 삼아 짓다[희제구필(戱題舊筆)]>


우리는 ‘물건’이 넘쳐나는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교실을 둘러봐도 연필, 지우개, 빗, 볼펜, 샤프 등이 주인을 잃은 채 아무 데나 널부러져 있되 정작 그 주인은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줄 모릅니다. 다시 사면 되기도 하고 그만한 애정을 깃들일 시간적, 정신적 여유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며 궁핍함을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생각할 거리를 주거나 필사할 만한 글들이 있을 때 붓펜을 가지고 한 자 한 자 정성껏 옮겨적곤 합니다. 손에 귀한 글귀를 새기면서 눈과 마음에 담아두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글감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 같은 붓 한 자루이지만 이규보는 그를 평생의 벗으로서 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옛사람은 물건 하나에도 애정과 관심을 쏟고 귀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을 지녔습니다. 벗으로 인해 자신이 높은 지위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서로 머리털도 빠지고 했으니 의지하며 살아가자는 다소 해학적이긴 하지만 사물에 대한 진솔함이 배어나는 글인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연필과 지우개가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써 보는 것 어떨까요?? 혹시 압니까? 사물에 혼을 담다 보면 나의 영혼의 친구가 될 수 있을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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