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14일

by 은은


利以養物(리이양물) 이로움으로 만물을 길러줘도

而無矜能(이무긍능) 재능을 자랑하지 않는다

厚以載物(후이재물) 두터움으로 만물을 포용해도

而不言功(이불언공) 공덕을 떠벌리지 않는다

- 기준(奇遵, 1492-1521), <포용의 뜰[(종용정(從容庭))>


기준은 조선 중기 학자입니다. 청소년 시절 중종 때 백성을 위하는 ‘위민(爲民)’과 백성을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애민(愛民)’이 핵심 가치인 도학정치(道學政治)를 펼친 급진적 개혁가인 조광조(趙光祖, 1482~1519)를 따르다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충청도 아산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함경도 온성으로 위리안치(圍籬安置: 죄인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는 형벌)되었습니다.


이곳에서 결국 사약을 받고 죽게 되는데 그때 나이 서른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임금과 반대 정치 세력을 원망하며 죽음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주위의 사물 60가지를 관찰하고 성찰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남긴 글이 <육십명(六十銘)>인데 <종용정>도 그중 하나입니다.(홍희창, 《선비들의 텃밭 조선의 채마밭》, 96~97쪽 참조.)


이로움으로 만물을 기르며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껴안고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공과 덕, 재능을 자랑하지 않는 것이 천지자연의 도입니다. 타자(생명, 무 생명, 미물, 사회적 약자 등)에게 약간의 친절과 인심을 베푼 뒤에 보답과 환심을 바라는 제가 한없이 부끄럽고 작아집니다.


권력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기울면 상대 세력의 목숨이 날아가는 당쟁의 매서움 앞에서 타인에게 포용되지 않고 만물을 포용할 줄 아는 기준의 당참과 늠름함, 차분함에 대장부의 기상을 엿볼 수 있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후손으로서 감사와 부채 의식을 지니게 됩니다.


노자는 “모든 걸 낳고도 소유하지 않고 / 일을 하고도 자랑하지 않는다.[생이불유 위이불시(生而不有 爲而不恃)]”고 하였습니다. ‘익명의 기부자’처럼 자신이 한 일을 내세우지 않는 맑은 하늘과 담담한 자연의 모습을 닮은 사람으로 종용하고도 묵묵히 거듭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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