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15일

by 은은


人病不休耳(인병불휴이) 사람은 쉬지 못해서 고생하는데

世以不休爲樂(세이불휴위락) 세상은 쉬지 않는 것을 좋아하네

- 강희맹(姜希孟, 1424-1483), <만휴정기(萬休亭記)>


강희맹은 조선 전기 서거정과 쌍벽을 이룬 명문장가입니다. 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까지 5대 임금을 거치면서 두터운 신망을 받았고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습니다. 위글은 오랜 관직 생활에 지친 나머지 지금의 서울 금천구, 경기도 시흥시와 광명시 일대인 금양(衿陽)이란 곳에 내려와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이에 대한 소감을 남긴 글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나이 든 농부들과 대화한 내용, 자신의 농사 경험 등을 토대로 《금양잡록(衿陽雜錄)》을 저술하였습니다.


현대인은 가만히 있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쉬고 있으면 왠지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막연한 불안에 휩싸이게 됩니다. 저 또한 수시로 핸드폰을 잡아보기도 하고 오지 않는 메일과 연락을 기다려보기도 합니다. 심지어 연인이 카페에 마주보고 앉아서 각자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만나서 대화를 하지 않고 핸드폰을 보고 있을거면 차라리 통화나 카카오톡 메시지를 서로 주고받으면 될 텐데 서로를 허수아비로 두고 폰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이 요즘 세태인가 하며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강희맹은 어려서 아무것도 모를 때, 늙어서 병든 때, 젊은 날 직장에서 영예와 치욕을 겪으며 부침할 때, 이익과 손해를 기뻐하고 슬퍼하며 고생하느라 제대로 쉴 수 없다고 말합니다.


길 위의 시인 매월당 김시습은 <그윽한 곳에 숨어 사는 즐거움[유거(幽居)]>이란 시에서 “생각 흩어 버리고 마음대로 소요하니[산거임소요(散慮任逍遙)] / 운수승(雲水僧, 김시습 자신)의 그윽한 취미 갈수록 무르익네[운수유취숙(雲水幽趣熟)]”라고 산책과 소요하는 즐거움을 노래하였습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혼자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불멍, 물멍, 명상, 산책, 캠핑, 산행, 한밤에 풀벌레 울음소리, 계곡물과 새소리에 귀 기울이기 등을 통해 내려놓음과 목적 없이 거니는 즐거움, 고요와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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