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17일

by 은은


採花作蜜 惟飴之似(채화작밀 유이이사)

꽃을 따서 만드는 꿀 엿처럼 달고

與油作對 其用不匱(여유작대 기용불궤)

기름과 마찬가지로 무궁무진하게 쓰이네.

人不廉取 罄倒乃已(인불령췌 경도내이)

그러니 사람들 마구 따내어 바닥을 보고야 그만두는구나.

汝渃不死 人慾奚旣(여약불사 인욕해기)

꿀벌 네가 죽지 않는 한 사람의 욕심 끝이 있을까

-이규보(李奎報, 1168~1241), <꿀벌을 기리는 노래[밀봉찬(蜜蜂贊)]>


제가 살고 있는 집 뒤편에는 장복산이, 앞으로는 진해 앞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주말에 아들 및 장인과 함께 산행을 가보면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야생화가 저희를 반겨 주곤 합니다. 더불어 노란 나비, 흰 나비, 청솔모, 열심히 꿀을 채집하고 있는 꿀벌들이며 잠자리, 새소리, 푸른 하늘과 바다 등 자연이 우리에게 무상으로 제공해주는 것들에 대해 일상의 행복과 함께 참 감사하다는 마음을 지니게 됩니다.


이 시는 꿀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욕심을 절제할 줄 모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요? 지구공동체에서 인간만이 무대의 주인공일까요? 인간의 오만과 탐욕으로 인해 꿀벌을 비롯한 생태적 다양성이 보존되지 않는다면 지구라는 무대에서 과연 인간 혼자만이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노자는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지지이불태(知止而不殆)]”라고 하였고 공자는 “낚시질은 하되 그물질은 하지 마라[조이불망(釣而不網)]”고 하였습니다. 지난 200여 년간 산업화와 정보화를 거치며 우리는 충분히 편리하고도 안락한 삶을 누려 왔습니다. 탐욕을 절제할 줄 모르고 자신과 집단의 이익만을 내세우다 보면 죽음과 멸종의 대상이 꿀벌만이 아닌 지구 생명공동체의 멸종과 자멸로 이어지게 됨은 자명합니다.


예수의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오천 명을 먹여 살리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나눔과 희생, 양보 정신을 오늘날 시급히 되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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