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행(李荇, 1478~1534), <내 평생 잘못은 멋대로 선비가 된 일이라네[평생실계만위유(平生失計漫爲儒)]>
용재(容齋) 이행은 입신양명의 포부를 안고 18세의 어린 나이에 관직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남들이 다 하니까 그 또한 세상을 크게 경영해 보아야지 하는 욕심이 어린 마음에 있었을 것입니다. 10년간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은 후 험난한 나랏일로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입니다. 그의 생애에 터닝포인트는 갑자사화(甲子士禍, 1504년)입니다. 연산군이 어머니 폐비 윤씨의 복위를 추진하면서 이에 반대했던 훈구 원로세력이 숙청당하면서 같은 당색인 그 또한 27세의 나이에 유배 생활을 하게 됩니다.
10년간의 짧은 정치 인생이었지만 그는 많이 지쳤나 봅니다. 진작에 벼슬길에 발 들이지 말고 농사꾼이 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세파(世波)에 떠밀려 귀촌을 하게 된 그는 허름하지만 몸을 누일 수 있는 집과 텃밭, 주변의 맑은 경치, 산에서 절로 나는 나물이 있어 욕심부리지 않고 평생을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자족합니다.
높은 관직과 많은 월급, 부귀영화가 세속의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행복에는 불행이 엎드려 있고 불행에는 행복의 싹이 나듯 사람의 삶이란 것이 언제 어떻게 바뀌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커다란 슬픔을 내비치며 시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지금 처지가 억울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뜻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아쉬움에서일까요? ‘하늘 우러러 통곡’한다는 마지막 시구에서 우리는 그의 아픔을 짐작해 볼 뿐입니다.
오랜 관직 생활에서 물러나 말년에 경기도 양주 석천동으로 귀촌한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은 <새로 지은 집[(신옥(新屋))>에서 당시의 기쁨을 아래와 같이 노래하였습니다.
五間新屋經時就(오간신옥경시취) 다섯 칸 새집을 짓고 나니
林燕山禽共落成(임연산금공락성) 숲속의 제비와 산새도 낙성을 함께 하네
擁戶畫圖千嶂立(옹호화도천봉립) 집을 끼고 그림 같은 천 겹의 산이 서 있는데
繞床琴筑一泉鳴(요상금공일천명) 책상 가득 거문고처럼 샘물 하나 울려 퍼진다네
門前池可求魚養(문전지가구어양) 문 앞의 못에서는 물고기를 키울 수 있고
籬下田堪借犢耕(리하전감차독경) 울타리 아래 밭에는 송아지 빌려 밭 갈 수 있다네
世事不豐幽意足(세사불풍유의족) 세상사 풍족치 못해도 숨어 사는 뜻에는 맞으니
從他人笑拙謀生(종타인소졸모생) 남들이 내 성긴 삶을 비웃은들 어떠리
저 또한 글로만 농사지으니 수시로 부끄러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은퇴 후 산수 좋은 곳에 조그마한 오두막집 한 칸을 짓고 마당 한켠에는 화초, 과일나무, 텃밭을 가꾸고 싶습니다. 반려동물로 닭, 개, 소 등을 키우고 새들은 친구 삼고 싶습니다. 아침저녁으로는 오솔길을 거닐고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자연스레 타고난 본성을 보존하며 살고 싶습니다. 이러한 삶이야말로 자연에 지구 생명공동체에 폐를 덜 끼치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나의 평생 혹은 평소의 잘못은 무엇일까 되돌아보게 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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