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19일

by 은은


吾欲退懸車(오욕퇴현거) 벼슬살이 그만두려고

一昨方上書(일작방상서) 이제 막 임금님께 글을 올렸네

上書未云幾(상서미운기) 글 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我馬忽然殂(아마홀연조) 내 말이 갑자기 죽어 버렸네

吾雖已莫騎(오수이막기) 내 이미 타지 않게 되었지만

棄去何早歟(기거하조여) 그리도 빨리 날 버리고 가는가

惻惻傷我懷(측측상아회) 쩌릿하게 마음이 아파

出門久踟躕(출문구지주) 문을 나와 오래도록 서성거리네

天以老佚我(천이로일아) 하늘께선 늙었다고 날 버리시고

奪我所曾跨(탈아소증과) 내가 타던 말까지 앗아 가셨네

如今伏枕時(여금복침시) 지금처럼 누워 있을 때에야

捨爾亦或可(사이역혹가) 네가 없어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若也有所如(약야유소여) 만약 가야 할 곳이 생기면

吾豈徙行者(오기사행자) 내 어찌 걸어다니겠는가

此生事可知(차생사가지) 인생사도 참으로 알 만하구나

老境反無馬(노경반무마) 늘그막에 말까지 없게 되다니

- 이규보(李奎報,1168~1241), 십이월십이일마폐상지유작(十二月十二日馬斃傷之有作)>


느티나무가 가족사진을 찍듯 정답게 늘어서 있고 누나, 동생 느티나무가 저희 교육원의 정자인 교우정(交友亭)의 이마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교육원 둘레에는 꽃잎이 지고 난 뒤 꽃대만 있는 상사화가 피어나 주위를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옛 선현들은 말뿐만 아니라 소, 개, 고양이, 닭, 염소 등 일생을 함께한 가축들을 가족처럼 생각하며 한 지붕 아래에서 먹을 것을 함께 나누고 기쁨과 즐거움, 슬픔 등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 하였습니다.


요즘은 반려동물, 반려 식물이라고 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나 이외의 생명을 돌보고 길러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규보 또한 그가 아끼던 반려동물인 말의 죽음 앞에서 ‘짜릿하게 마음이 아파 / 문을 나와 오래도록 서성거리네’라고 표현하며 비록 짐승이지만 오래도록 벼슬살이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벗’으로서 그의 죽음을 가슴 짠하게 안타까워하고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처가에서 키우던 반려견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간의 나이로 치면 천수(天壽)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뒤 끝이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말년에는 치매가 걸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데 삼시 세끼는 꼬박꼬박 챙겨 먹는 일은 참 신기해 보였습니다. 관절이 아파 계단을 오르내리지도 못하고 눈에는 백내장이 생겨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습니다.


죽음에 임박해서는 항문이 빠지는 고통을 겪다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장인이 40대 중반일 때 한 식구가 되어 이십 년을 함께 한 친구였고 유독 처가 식구들 중에서 장인을 많이 따랐습니다. 그 아이를 화장한 뒤에 집 앞 뜰에 묻어주고는 꽃으로 가는 길을 맞아주었습니다.


장인은 반려견의 생전 모습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기념하고 그간의 소회를 밝히는 글을 남겼습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씀은 “오늘 하루만 슬퍼할게~ 입양해서 장가도 못 보내고 바깥 산책도 제대로 시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혹자는 부모님께 효도도 잘 못하면서 키우던 동물에게 그렇게 애정을 쏟느냐고 비난하실 수 있겠지만 견공의 충성과 일편단심을 생각하면 그리 욕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 또한 마음 한켠이 짠해지면서 눈가에 눈물이 맺히네요. 이규보 또한 장인과 비슷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헤아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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