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20일

by 은은


好是炎天憩(호시염천게) 더운 날씨에 쉬기 좋고

宜於急雨遮(의어급우차) 소낙비 피하기도 좋아라

淸陰一傘許(청음일산허) 시원한 그늘 양산만 하니

爲貺亦云多(위황역다운) 주는 혜택 또한 많구나<대수(大樹)>

南北行人暍(남북행인갈) 오가는 행인 더위에 지쳤는데

寒漿當路傍(한장당로방) 시원한 물을 길가에서 만났네

勺泉能潤國(작천능윤국) 조그만 샘물 온 나라를 적시니

再拜迺堪嘗(재배내감상) 두 번 절하고야 맛볼 수 있네<한천(寒泉)>

- 이규보(李奎報,1168~1241), <길가에서 두 수를 읆다[로방이영(路傍二詠)]>


저는 하루의 일과 중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걷기입니다. 교육원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매주 한 번씩 회복 교육을 나가게 되면 기본 일만 걸음이 넘게 됩니다. 여기 오기 잘한 점은 원하든 원치 않든 자주 걷게 된다는 것인 것 같습니다. 학기 중에는 주말에, 방학에는 거의 매일 집 주변의 공원을 자녀, 그리고 반려견과 함께 걷습니다. 함께 걷지 못할 사정이 생길 시에는 저 혼자라도 걷습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걷는 재미와 운치는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기쁨과 만족감,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을 수 있다는 감사함이 듭니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는 이른 아침 시간이나 해가 진 뒤에 집 주변을 산책하고 합니다. 산책을 하다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나무이며 그중에서도 큰 그늘을 자랑하는 느티나무인 것 같습니다.


나무의 은택(恩澤: 은혜와 혜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선 더운 날씨에 쉬어가기 좋습니다. 급작스러운 소낙비를 피하기에도 안성맞춤입니다. 무성한 가지와 잎은 그 자체로 하나의 커다란 자연산 우산과 양산이 됩니다. 이럴 때 나무는 신분 고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음이 힘든 사람, 삶이 고달픈 사람을 말없이 달래주고 보듬어주는 은인(恩人)이 됩니다.


마을의 이정표이자 터줏대감이기도 한 고목(古木)은 오랜 세월의 풍상(風霜)을 견딘 만큼 그 위풍당당함에 신령스러움과 경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규보의 표현대로 절로 절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활짝 편 가지들과 잎사귀는 햇볕을 다 가리지 않고 그 틈새 사이사이로 흙 위의 뭇 생명들, 땅 아래 미생물들과 햇빛을 공유하며 공존합니다.


무더운 여름날 산사(山寺)를 둘러보며 마셔봤던 샘물의 맛은 또 어떻습니까? 적시에 내린 단비처럼 때마침 그 자리에 있는 작은 샘물이 청량감을 주었던 추억을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조그만 샘물이 흘러 하천과 강을 이루고 다시 비가 되어 온 나라를 적시니 물의 은공(恩功) 또한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시인은 자연물인 물에 대해 두 번이나 절을 하고 나서야 그것을 맛본다고 심경을 토로했을까요? 대인군자와 같은 크나큰 은택에 감복해서 작가 자신이 절로 우러나오는 행위라 생각됩니다. 이렇듯 자연은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다 내어줍니다.


오늘부터라도 우리도 나무와 샘물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한 작지만 큰 생태적 실천들을 모아 보는 건 어떨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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