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21일

by 은은


交情淡若水(교정담약수) 우리의 사귐 물처럼 맑고

團扇皎如霜(단선교여상) 둥근 부채는 서리처럼 희다

不夜月長滿(불야월장만) 밤이 아닌데도 보름달을 늘 보겠고

先秋風自凉(선추풍자량) 가을 오기 전에 바람 절로 서늘하겠네

君心眞似氷(군심진사빙) 그대의 마음 얼음처럼 맑아

相對洗煩鬱(상대세번울) 만나면 울적한 마음 씻어주더니

更贈一襟秋(갱증일금추) 다시 마음의 가을까지 보내어

留爲雙手月(류위쌍수월) 양손에 둥근 달을 들려주었네

- 이규보의 <친구의 부채선물을 고마워하며[謝人惠扇(사인혜선)]>

이규보의 지인이 그를 위해 하얗고 둥근 부채를 선물했습니다. 그는 얼음처럼 맑은 벗의 맑은 마음 씀씀이로 인해 울적한 마음을 달랠 수 있어 좋다고 합니다. 또한 부채가 하나가 아닌 반원형의 부채 둘을 보냄으로써 친구의 마음 반, 자신의 마음 반이 합쳐져 밤이 아닌데도 늘 둥근 보름달을 볼 수 있다고 흐뭇해합니다.


우리도 이규보와 그의 벗처럼 단순히 알고 지내는 사람이 아닌 지기(知己,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로서 맑은 사귐을 평생 이어갈 수 있는 사람 하나를 두면 어떨까요? 그러기 위해선 나 또한 맑고 밝은 사람이 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해 나가야겠지요


저는 서른이 되어서야 자립하여 이곳 창원의 모 중학교에 몸담게 되었습니다. 그때 만나게 된 분이 동향의 국어과 선생님이셨습니다. 연배로는 저와 14살 정도 차이가 납니다. 이분과 이십년 가까이 소식을 이어가며 사우(師友)로서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최근에 만나 뵌 적이 있는데 귀한 부채선물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늘 빈손이라 죄송한 마음을 안고 있었는데 또 은혜를 입게 되어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조선 중기 4대 문장가의 한 사람인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는 세 명의 벗들에게 보내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會友當以文(회우당이문) 벗은 학문으로 만나고

言志當以詩(언지당이시) 마음은 시로 표현해야지

知音有三益(지음유삼익) 세 가지 도움을 주는 나의 벗들

賁然同來思(비연동래사) 영광스럽게 함께들 왔네

相看各老大(상간각노대) 서로 쳐다보니 모두들 늙었기에

撫迹翻傷悲(무적번상비) 옛일 더듬으며 문득 슬퍼한다오

蕭辰可乘興(소신가승흥) 분위기 절로 나는 소슬한 이 계절

珍重望前期(진중망전기) 다시 만날 때까지 몸들 소중히 하오

- ‘앞의 운[詩, 思, 悲, 期] 네 글자를 써서 낙전, 분서, 중문 등 세 군자가 방문해 준 것을 감사하며 쓴 시[用前韻 謝樂全汾西仲文三君子來訪(용전운 사낙전분서중문삼군자래방]


벗은 시대적 물음과 과제, 그리고 요청에 대해 함께 공부하기 위해 만나고 서로의 마음을 시로 주고받기도 합니다. 세 가지 도움을 주는 벗이란 《논어》에서 따온 말로 정직한 친구에게는 나의 허물을 듣고[우직(友直)], 성실한 친구에게는 참됨을 배우며[우량[友諒]], 견문이 넓은 친구에게는 세상 물정을 알게 됨[우다문(友多聞)]을 말합니다. 장유를 포함한 세 명의 친구가 시간이 흘러 모두 노인이 되었으니 다음에 누구 하나 병으로 빠지는 일 없이 각자 몸 관리 잘해서 다음에 또 만날 것을 기약하는, 서로에 대한 따스하고 애틋한 마음이 잘 드러납니다.


오늘 저는 지구 생명 공동체에게 정직하고 성실했는지, 이웃과 생명 돌봄이라는 견문을 넓히기 위해 어떤 노력과 정성을 다하였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따뜻하고 친절한 선물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구름 낀 어슴푸레한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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