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嗚呼復嗚呼(오호부오호) 어허 어허!
爲誰長潸然(수위산체연) 누굴 위해 눈물 흘리나?
再歌民亦勞(재가민역로) 백성들 괴로움 노래하며
悠悠望蒼天(유유망창천) 아득한 하늘 바라보네
雕楹刻桷事奢麗(조영각각사사려) 기둥 들보 아로새기며 사치 일삼는 동안
卒歲田家無短褐(졸세전가무단갈) 한 해 가도록 농가에는 거친 베옷 한 벌 없었지
可惜木石本無脛(가석목석본무경) 애석하다, 목석이야 본래 팔다리가 없다지만
哀哉蒼生皮有血(애재창생피유혈) 슬프도다, 백성에겐 피와 살이 있음이여!
剝皮浚血旣割骨(박피준혈기할골) 가죽 벗겨 피 빨고 뼈까지 도려내고도
侈欲靡靡不知歇(치욕미미부지헐) 가진 자의 욕심은 하늘을 찔러 그칠 줄을 모르누나
–김시습(1435~1493), <시대를 탄식하는 노래[오호가(嗚呼歌)]>
지난밤 잠자기 전 베란다 앞에 앉아 있다 문득 이런 시구가 떠올랐습니다.
아침에는
구구 비둘기 소리
밤새 묵상을 매듭짓지 못한 귀뚜라미 소리
참새가 재잘대는 산뜻함이 공존하고
낮에는 매엠매엠
사위를 쩌렁쩌렁 울리는
사자후 같은 매미소리
밤에는 찌찌찌찌
자연에 고요히 접속하는
수줍은 소녀의
기도같은 귀뚜라미 소리
어제가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處暑)였습니다. 자연의 시간은 어김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간밤에 더위를 식히는 비가 내려 남은 여흥을 비우지 못한 무더위를 한 발짝 물러서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김시습의 <시대를 탄식하는 노래[오호가(嗚呼歌)>를 함께 공부해 보고자 합니다. 저는 이 시를 읽고는 사회지도층 혹은 기득권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위드 코로나’, ‘위드 인공지능’, ‘기후 위기’의 시대에 세계 각국의 시민들과 동식물, 자연이 이상기온으로 인한 산불, 홍수, 폭염으로 시름시름 앓거나 생명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과 자만, 겸손을 모르는 오만으로 비롯된 이러한 문명적 재난 상황에서 고통받는 것은 늘 사회적 약자와 동식물들임을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나부터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 가진 것은 별로 없어도 나눌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지니고 검소하고 소박한 삶의 추구, 절제, 친절, 봉사, 협력하는 삶을 실천해 나가보면 어떨런지요?
우리 선조들은 애물(愛物, 사물을 아끼고 사랑함)과 절용(節用, 물건 아껴쓰기)을 강조하고 실천해왔습니다. 얼마 전에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끝났는데요.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구의원, 시의원, 도의원을 뽑고 도지사, 시장, 국회의원, 대통령을 선출하였습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가장 윗자리에 계신 분들이 애물과 절용을 실천하고 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국회의원 의석이 300석 가까이 되는데요. 이분들 한 사람에게 지출되는 세비(歲費, 국회의원의 보수로 매달 지급되는 수당 및 활동비)가 10여억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물론 국회의원을 돕는 보좌관들의 보수도 포함된 금액이긴 하지만요. 점심식사를 하러 갈 때면 가까운 거리에도 불구하고 까만색 고급 승용차들이 줄을 지어 서서 국회의원들을 모셔가려고 대기 중이라고 합니다.
가까운 거리는 보좌진과 동료 의원들과 담소도 나누고 국정을 얘기하면 걸어가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과연 지도층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잘 실천하고 있다면 환영하며 존경의 마음을 품게 될까요? 옛 선현들의 애물과 절용을 잘 실천하고 계시다며 박수를 치고 있을까요?
인도의 성자이자 간디의 비폭력 정신을 계승한 비노바 바베는 인도 전역을 도보로 걸으며 땅을 많이 가진 부유층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이들이 가진 토지의 1/6을 기부해 달라는 토지 헌납 운동을 벌였습니다.
재산이 많아야지만 사회에 공헌하고 기부와 나눔을 잘 실천하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도 유럽 선진국의 지도층처럼 자전거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거나 최소한의 연봉, 혹은 봉사직으로 국민의 뜻을 대신하게 하면 어떨까요?
지위와 명예, 겉치레는 걷어 내고 진정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해 봉사하고 눈물 흘리며 두 손 잡아줄 줄 아는 정치인과 시대의 어른이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