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
與其視人寧自視(여기시인영자시) 남을 보기보다 나 자신을 보고
與其聽人寧自聽(여기청인영자청) 남에게서 듣기보다 나 자신에게 들으리라
-위백규(魏伯珪, 1727~1798), <座右銘(좌우명)>
어제는 교육원 아이들과 회복교육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주는 일관되게 더운 기운을 몰아내려는 비의 연속이라 야외 활동은 하지 못하고 오전에는 양초 만들기를 아이들과 함께 만들고, 오후에는 재난 영화인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고 왔습니다.
우리가 학교 생활과 직장, 단체 생활을 하다보면 옳고 그름을 떠나 개인의 의견보다는 단체의 의견과 집단 행동에 휩쓸리기가 십상입니다. 이럴 때 자신의 주장을 소신을 가지고 강단 있게 추구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선비들은 나라와 백성을 위한 걱정에 임금에게 직언을 하다가 목숨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주관과 용기, 인생 가치관이라 할 수 있는 좌우명을 지닌다면 시류(時流)에 덜 휩쓸리게 되지 않을까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며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 선현들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과 실천을 했을까요? 여기 조선 후기 호남파 실학의 대가인 위백규는 자신의 <좌우명(座右銘)>을 위와 같이 짓고 이를 평생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지침이 될 만한 좌우명을 가지고 있나요?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과 실천을 하고 있는지요? 이 글을 읽은 10대들의 생각을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10대들은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남의 눈치 보지 않기,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기, 내가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탐구해 보기, 스스로를 격려하는 말 해주기, 나만의 행복 찾기,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등 다양한 의견을 내보였습니다.
위백규는 ‘자신을 바라보라’, ‘자신에게서 들으라’라고 그의 좌우명을 통해 힘주어 말합니다. 저는 10대들에게 이렇게 덧붙이고 싶습니다. 고요와 침묵의 한 가운데에 서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나와 지구 생명공동체가 들려주는 내면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보살필 줄 아는 자세가 ‘지구별에서 내 삶의 주인 되기’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