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일
人心如日月(인심여일월) 사람의 마음은 해와 달 같아
本來皆淸淨(본래개청정) 본래 모두 맑고 깨끗하건만
利欲多蔽晦(리욕다폐회) 이익과 욕심에 눈이 멀어
紛紛事趨競(분분사추경) 어지럽게 다투며 경쟁하누나
農夫雖作苦(농부수작고) 농부의 일 비록 고달프긴 하지만
却不枉天性(각불왕천성) 본래의 성품을 지켜주는 일이라네
君看脅肩子(군간협견자) 어깨를 으쓱이며 아첨하는 이들 보면
夏畦未爲病(하휴미위병) 여름철 농사일 힘들 것 하나 없다네
-장유, <歸田漫賦(귀전만부)> 중 제 7수
귀뚜라미 찌찌찌찌
맥문동 꽃밭에서
술래잡기 하듯
아침을 맞이하는
노란 나비 한 쌍
절로 웃음이 피어나는
비오는 아침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있어 계곡(雞谷) 장유(1588~1638)의 <농부의 일>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선현들은 한결같이 농부의 일 즉, 농사를 인간과 자연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고 지켜주는 일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때의 농사는 미국식의 기계를 이용한 대규모 농업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기계를 사용함으로써 의식주에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생필품들보다 보다 빠르게 보다 많이 생산하며 편리함을 누리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러한 생활이 사람과 자연을 물질화하고 기계의 노예가 되도록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습니다.
‘이익과 욕심에 눈이 멀어/어지럽게 다투며 경쟁’한다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로 인해 본래 해와 달과 같이 밝은 눈과 마음, 올곧은 정신은 사라지고 이익만을 다투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농부의 일이 왜 타고난 본래의 성품을 지켜주는 일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을까요? 농부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해가 질 때까지 허리 숙여 일을 하며 농작물의 상태를 살피게 됩니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얘기를 한 번쯤 들어보셨지요? 그만큼 부지런함과 생명을 자주 돌아보고 관심을 갖고 살피려는 마음을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집에서 고양이나, 강아지 등 반려동물을 돌보더라도 어디 마음 놓고 집을 비우기가 마음에 걸리곤 하지요. 생명을 다루고 돌보는 일이 그만큼 마음 씀과 그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우리는 이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생명 키우는 일에 애를 쓰곤 합니다.
농부의 일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흙과 생명을 대하며 한없이 겸손해지게 되고 땀 흘리며 육체와 생명의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주어진 환경과 삶에 만족하며 욕심부리지 않으며 일이 비록 고되고 힘들더라도 정성껏 생명 돌봄 활동을 한 결과로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수확물을 통해 이웃과의 나눔도 실천할 수 있기에 자연의 본성에 더 가까워지게 된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제는 앞만 보며 뛰어갈 것이 아니라 ‘자연의 속도’에 걸맞은 생활을 실천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필요한 만큼만 가지도록 노력하고 생명의 기술자인 농부처럼 자연과 주변 생명, 생명 없는 것을 돌보아가며 살아갈 줄 아는 생태적 지혜가 기후 위기 시대에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자급자족할 줄 아는 농부의 삶의 자세와 지혜야말로 기후 위기 시대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