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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돌 Jan 06. 2023

세상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질문

참 별스런 호기심도 다 있다

참 별스런 호기심도 다 있다

  

‘나는 누구인가.’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질문 하나만 꼽으라면 이 질문이 아닐까? ‘나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은 마치 손아귀에 숟가락을 들고 앉아서 “숟가락 어딨 어?”라고 묻는 사태 같다. 엄연히 내가 여기 있으면서, 그런 내가 나를 묻다니. 어떻게 보면 치매 환자나 할 법한 질문 같다. 그런데 이 질문의 수명이 수백 년이고, 수많은 사람에게 회자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누구인가.    

 

한평생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나’에 대해 새삼스레 누구냐고 따져 묻는 이 황당한 질문이 수백 년간 이어져오는 이유는 왜일까. 교과서에 두루두루 승명을 올리신 선승부터 나 같은 필부까지 며칠 밤낮을 죽어라고 엉겨 붙어도 풀리지 않은 질문. 그래, 나는 누구냐!      


십수 년 전 나는 이 문제를 들고 일주일간 밤낮없이 스스로 답하고, 스스로 버리고, 새로운 답을 들어 올리곤 했었다. 누구 아버지, 누구 아들, 누구 조카, 누구 동생, 누구 삼촌.... 기약 없이 묻고 답하면서 모종의 결과를 얻었을까. 결과를 봤다는 말은 내 목숨이 끊어졌거나 삶의 본질을 만났다는 말이 될 터이다.       

 

돌이켜보면 이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이 의미를 가질 무렵부터 내 인생이 무거워지기 시작한 다. 이게 무슨 말이지? 하다가, 아니 이거, 빤히 보면서도 답할 수가 없네? 당혹스러워졌을 때부터 삶이 번잡해진 듯하다.  


거의 모든 포유류는 호기심이라는 심리기제를 갖고 있다. 길고양이는 지나가다가 쓰레기통을 발견하면 호기심이 발동하나 보다. 개는 지나가다 다른 개를 발견하면 대체로 목줄을 끌어당기곤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그 짐승들을 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을 만났다. 만약 저 개나 고양이들이 문득 ‘나는 누구지?’라고 자신을 향한 호기심을 부리게 된다면?    

   

사람은 그런 점에서 존재의 본질에 조금 더 다가와 있는 듯하다. 같은 영장류에 속하면서도 거의 유일하게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지금 자신의 의식과 함께 움직이는 존재에 대해 묻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일반적으로 이런 호기심은 새로운 것과 관계가 깊다. 남녀 간의 사랑도 알고 보면 접촉에 따른 새로운 감각이나 생각, 감정들이 왕성하게 생산됨으로써 성립한다. 두 사람은 대체로 새롭게 나눌 것이 빈약해지면 관계가 느슨해지며 관계의 변곡점을 맞이한다. 호기심에 관한 심리치료적 이해를 보면, 호기심 없는 사람은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에 빠질 확률이 높다. 노년기에는 특히 호기심 왕성한 사람의 건강 수명이 더 길다는 보고도 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는 의욕과 능력이 생명력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의도적인 훈련으로도 강화시킬 수 있는 심리기제다.      


뇌과학에서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는 말이 있다. 뉴런과 시냅스라는 뇌세포가 스스로 신경 배열을 재설계하는 일종의 뇌세포 네트워크다. 비슷한 학습이나 경험을 반복하면 마치 사람 발길이 잦은 숲 속에 길이 나듯이 뉴런과 시냅스가 겹치고 겹치면서 뇌 속에 신경세포의 길이 닦이는 현상이다.   

  

호기심의 길도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 호기심의 갈래는 안쪽 아니면 바깥쪽, 크게 보면 이 정도로 나뉜다. 당신의 호기심이 안쪽을 향한다는 의미는 마음의 길이 내면으로 열려서 자기 관찰의 신경망이 작동 중임을 의미한다. 바깥쪽을 향한다는 것은 타인이나 외부 존재에 대한 관심의 길이 뚫려있다는 것이다.     

 

아무렇든 두뇌의 도로망은 다양할수록 좋다. 그만큼 젊고 싱싱한 상태다. 그런 뇌가 만드는 의식은 자유롭고 유연하고 풍성하다. 호기심의 방향 또한 다양할수록 좋다. 하지만, 여전히 파충류의 뇌가 암약 중인 당신에게 내면으로 향하는 길은 히말라야 절벽길처럼 위태롭고 비좁다.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 라는 ‘겨우겨우 사람’인 당신의 호기심을 그냥 방치해 두면, 내면으로 방향 잡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동물의 호기심은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지 않는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이라 해서 무조건 자신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란 법은 없다. 반드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만이 행복한 삶을 지원하는 조건도 아니다. 내면으로 가는 도로 뚫기 방법은 쌔고 쌨다. 당신의 천부적 재능인 호기심이 허공을 떠돌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결의만 굳힌다면, 자신에게로 향하는 길은 즉시 열린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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