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명상 시간을 가지면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그만 둔다. 일반적으로 명상은 앉아서 척추 편 채 눈 감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 자세로 십분 또는, 삼십분 이상 앉아 있는 것이 재밌다니. 차라리 한두 시간 달리기 하고 말지. 명상 초보자치고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좌명상을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왜일까. 이 지난하고 답답한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니.
<불교와 사상의학 연구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7년도 우리나라 국민 소득이 1인당 2만 달러를 넘어서는 것을 기점으로 웰빙과 힐링 바람이 불어왔다고 한다. ‘남방불교’ 혹은 ‘위빠사나’라 불리우는 초기불교 수행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는 시점과 비슷하다. 2004년 이후에는 명상 관련한 논문들이 매년 25% 이상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는 명상에 대한 관심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반영한 수치다.
앉아서 하는 명상만을 말한다면, 대체로 초보 명상가가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들끓는 잡념이다.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과거의 회한이나 아쉬움, 슬픔, 분노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 걱정 따위 들이다. 이것들은 마치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송사리 떼나 쇠파리 떼 같다. 눈 감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번다해진다. 심리학에서는 마음의 상처가 크거나 많은 사람일수록 잡념들은 더 강력하고 집요하다고 말한다.
명상하면 고요해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전혀 아니네요? 따지듯 묻는 사람도 있다. 그 이유는 정좌명상할 때 대체로 눈을 감기 때문이다. 눈을 감는다는 의미는 모든 외부의 위험에게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조건을 포기한 상태이다. 누군가 자신을 가격하거나 무엇인가 날아와서 때린다 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눈이라는 강력한 정보기관의 작동을 한 순간에 포기하는 것. 한 여름에도 사방 문을 꼭꼭 닫아걸고 땀을 비직거리면서 잠자는 이유는 눈 감은 상태라는 게 얼마나 위중한 조건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니, 눈을 감으면 온갖 생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교도소 명상 안내 중에 심심찮게 벌어지는 현상이 있다. 모두 눈 감고 명상하는 중에 ‘눈 감지 못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모두들 가지런히 눈을 감고 있는데 눈을 빤히 뜨고 있는 사람을 본다는 건 가슴이 살짝 덜컥거릴 일이다. 좌선을 마치고 물었다. 눈을 감지 못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아, 네. 그럴 일이.... 괜찮습니다. 말씀해보시죠. 잊고 싶은 지난 일들이 떠올라서요. 꿈에라도 나올까 잠도 잘 못자는 걸요. 이런 일은 그런 유폐 시설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기업체 직원들도 명상 중에 눈을 감지 못하는 경우가, 유사 비율이다.
초보 명상가에게 잡념이 창궐하는 이유는 뭘까. 이런 잡념은 대중의 명상 접근을 방해하는 결정적 요인이기도 하다. 떠오르는 온갖 기억, 생각, 감정, 미래 두려움, 예상, 상상 들이 얽히고 설키면서 명상 생활에 대한 좌절을 겪기도 한다. 나만 이러는 건가. 남들은 저렇게 끄덕없이 앉아 있는데 내 머릿속은 뭐지! 좌절감이 무르익으면서 그런 감정이 생각을 만들고, 생각에 기억이 이어붙고, 기억에 감정이 들러붙는다. 나중에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서, 이것이 과연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자의식의 회오리에 빠져들곤 한다.
초보 명상가에게 이런 과정은 거의 필연이다. 하지만 몸과 마음에 대한 사유를 조금만 보태면 왜 이런 현상들이 발생하는지 이해할 수도 있다.
초보 명상가는 넘치는 쓰레기 같은 기억, 생각, 감정 따위를 앞뒤 없는 초현실주의 영화 화면 바라보듯 바라보는 게 일반적이다. 어느 명상터에서는 이것을 ‘바라보기’라고도 칭한다. 떠오르는 기억이나 생각, 감정을 영화보듯이 바라보면서 ‘그렇구나’ 해주는 게 소위 ‘바라보기’다.
자전거를 배워도 한 동안 흔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두 개의 바퀴가 균형 잡으며 구르기 전에는 완전한 균형감으로 씽씽 달리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당신은 곧 거침없이 달리는 기쁨의 맛을 보게 될 것이다. 안정된 환경에서 허리를 세워, 눈을 감고, 몸을 이완하는 연습을 자주 하다보면 잡념이 사라져 쾌청한 상태를 만나게 될 것이다. 어떤 도구나 준비물 없이 ‘재미와 의미와 몰입’을 보장하는 거의 유일한 행위가 명상이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