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그리워해야만 하는 이런 밤이.
-
미워하는 마음보다는 사랑에 아픈 게 낫다는 게, 스물셋 이후 내가 내린 이별 지론이다.
헤어진 이의 저주를 빈다 거나, 문득 마주친 그에게 자존심 세워 냉담하는 일은 당장은 씩씩해보일 수 있다.
이별자를 걱정하는 이들에게도 꽤 보여주기 좋은 안심일 테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니.
하지만 사람은 무가 아니고 나도 사람이라 무가 될 수 없다. 사랑은 싹뚝 칼로 썰어내 댕강 잘려나가지 않아서, 실은 죄다 어거지였다. 보이는 것과 마음은 늘 가장 반대에 있었다. 그걸 나만 알고 있는 것은 덤이었고.
겨우 겨우 버텨내다 간헐적으로 무너지기도 했다. 다시 간신히 일어나 바짝 미움을 곧추 세워도 이내 사랑을 포함한 이별의 모든 정서가 물밀듯 밀려와 나를 살지 못하게 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울고, 아프고, 감정을 다 쏟아냈었다면, 무너질 때 확실히 무너졌었다면. 이별에 자존심 같은 거 세우지 말고, 헤어짐 앞에 남기는 마음 같은 거 두지 말고, 그렇게 사랑에 열심히 아팠다면.
그랬다면, 나는 그 애를 그렇게까지 애닳아 하진 않았을 것 같다.
모든 것이 다 사라진 지금에도 그때의 내가 참 처절하게 기억되지도 않았을 거 같고.
없는 힘을 어디서 그렇게 끌어 와서 웃어댔는지.
있지도 않은 미움을 대체 어디서 데리고 와서 쏘아댔는지.
자존심 그게 뭐라고, 걱정 끼치고 싶지 않은 이타심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 애가 떠난 집에서 한참씩을 울고 다시 울고 또 울다 지치던 밤에,
현관문 밖으로 들리는 발걸음 소리에 혹시 네가 아닐까,
베란다 너머로 들리는 자동차 소리에 혹시 네가 온 게 아닐까,
수없이 기대를 쌓고 무너트리던 그 밤에,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보다는 사랑에 아픈 게 낫구나.
어거지로 미움을 쏘대던 것보다 한참씩을 우는 지금이 훨 낫네.
미련스럽고 불쌍해보이기도 하는데 그래도 쿨한 척 웃어대던 낮의 나보다는 낫구나.
-
"우리가 사랑같은 걸.. 했었단 말이지."
분명 그렇게 될 거야.
낯설어질 거야.
지금의 너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지만
어느 날의 너는 나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을 거야.
굳이 시간을 쏟지 않았어도
사랑같은 걸 나누지 않었어도
모두가 알 수 있는 정보들로만 나를 알게 될 거야.
이름이나 전공 같은 거 정도만.
아, 그조차 까먹었을 수도 있어. 진짜 성별 밖에는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지.
우리 사랑이 대단하지 않았듯이 이별도 그럴 거야.
그러니까 너무 슬퍼는 말아.
얼른 씩씩해지자.
원래의 너를 찾자.
내가 없던 너.
나를 그리워하지 않던 너.
나의 품에 안기지 않았던 너.
그런 너로 돌아가.
나 없이도 잘 살았잖아.
너는 또 그렇게 될 거야.
잘 할 수 있어.
-
그 언젠가 써두었던 이별글.
지나고보니 정말 그렇더라.
모든 걸 속속들이 다 알았던 사람인데
삼만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인데
이제는 그가 좋아했던 어떤 것도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우리 그때 꽤 자주 갔던 피씨방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그가 제일 좋아했던 그 노래도 뇌에 힘을 주어 생각지 않으면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에 대해 말해보라면
그땐 며칠을 꼬박 말하고도 아직 모자랐을 텐데
이제는 이름, 성별, 전공... 같은 거 말곤 그리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사랑같은 걸 굳이 나누지 않아도
그 오랜 시간 서로 마주 하지 않았어도
모두 다 알 수 있는 아주 작은 정보들로 밖에는 그를 표현할 수 없다.
채웠던 것만큼이나
비워내는 것이
헤어짐이고
이별이고
그런 거 다 알긴 아는데,
우리는 이렇게 되려고 그렇게 나란했나
부단했나
소란했나
하는 마음이 안 들 수는 없어서.
-
<이별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