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는 건지도.
띠링, 갑작스런 알림. 새 대화창이 하나 생기는 소리.
-뭐 해?
-딱히 뭐 안 안 해.
-그럼 나 이거 좀 도와줄래?
띠링, 또 같은 대화창에서 알림.
-바빠?
-왜?
-아니 내가 어제....
띠링, 또 그 창.
-오늘 너무 덥지 않아?
-여름이니까.
-하하, 그치.
그리고 또 다시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벌써 몇 주째, 그 애와 시답잔은 얘기를 나누는 중.
어느새 새 대화창이 빼곡, 차근, 차오르고,
나는 눈치 없는 척 굴고 있지만,
알고 있어.
나의 이별 소식과 함께 시작된 그 알림.
이사 소식과 함께 더욱 잦아진 그 알림.
알아, 나 네 타입이지?
-
지난번에 물었지.
어떤 남자를 좋아하느냐고.
정확히 너와는 반대에 있는 남자를 좋아해- 라는 말이 순간 홀로그램으로 우리 사이에 띄워졌어.
나는 그걸 그대로 읽을까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마냥 착하지는 않은 사람이 좋아-라고 말했어.
네가 너의 착함을 꽤 큰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듯 보여서 뱉은 말이었는데
꼭 착한 애들은 그렇게 말해도 알아듣질 못해.
다들 자기처럼 착한 줄 알고, 상처 주려고 한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아 정말? 맞아 너무 착해서 빚보증 서주면 어떡해- 이런 말이나 하지.
잔인해. 좀 못된 애들한텐 적당히만 에둘러도 알아듣는데
너 같이 착한 애들에게 먹히는 건 언제나 정공법이야.
"네가 싫어"나 "너는 남자로 안 보여"같은 말들 말야.
그렇게 못되게 뱉고 싶지 않은데, 뭘 어떡해.
너는 착해서 세상을 나쁘게 볼 수 없는 사람인 걸.
너 말야. 나한테 처음이 아니야.
내 인생엔 너 같은 남자들이 여럿 있었어.
착한 남자들 말이야. 진짜 정말 착한 남자들.
순수하고 다정하고 나쁠래야 나쁠 수 없게 태어나고 설계된 남자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런 남자들의 마음은 받아주지 않았지.
그 남자들을 보낼 때마다 생각한 건데 역시 사람은 지 팔자를 지가 꼬는 게 맞나 봐.
그러고 나서 택한 놈들은 하나 같이 나를 벼랑으로 몰아세우는 놈들이었거든.
뭐 대단한 거 해주는 것도 아니면서 생색은 이만큼씩 내고
웃는 날보다 울리는 날이 많은 놈들이었어.
마음에 바람 잘 날 없게 하는 나쁜 놈들
자존감도 이따 만큼씩 깎아 먹는 못난 놈들
꼭 그런 놈들이더라.
나는 알아.
오빠보다 너는 훨씬 좋은 남자야.
너는 날 울리지 않을 사람이고
오빠가 줬던 것보다도 더 큰걸 줄 수 있는 사람이고
내 말은 다 맞다고 해줄 사람이지.
그래도 너는 절대 아냐.
-
나 말야, 오빠를 만나는 내내 단 한 번도 섹스 문제로 편했던 적이 없었어.
처음엔 오빠가 너무 하고 싶어 해서 힘들었고,
시간이 지나자 나한테 흥미가 떨어진 게 보여서 힘들었어.
뭐 대단히 길게 만난 것도 아닌데 달에 한 번도 못 해주더라고.
자존감, 자존심 그런 것도 많이 다치긴 했는데
가장 다친 건 여자로서의 내 영혼이었어.
부정받는 기분을 너무 오래 느끼다 보니까 어느 날부터는 내가 너무 못나게 보이더라고.
그래, 네가 이렇게 생겼으니까 너랑 하기 싫지, 이런 말을 스스로에게 뱉고 있더라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람 같았어.
진짜 제일 못난 사람.
암튼 밤엔 거의 매일 울었던 거 같아.
우리 관계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고 있을 텐데
그래도 나랑은 하기 싫구나.
헤어지는 건 해도
섹스는 못하겠다는 사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다만 다치는 거 밖엔 선택지가 없더라고.
섹스리스는 그런 거더라.
몸의 욕정이 해결이 안 돼서 속상한 게 아니라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일이더라고.
너를 만났을 때 나는 그러는 중이었어.
다치고 울고 너덜너덜 다 찢어발겨지는 중이었어.
그래서 네가 날 여자로 봐주는 거 진짜 고마워.
예뻐해 주는 것도 너무 고맙고.
네가 내 행동에 가끔 버퍼링 걸리는 것도, 바짝 긴장한 얼굴로 나 봐주는 것도 너무 고맙고.
너 덕분에 내가 드디어 여자로 존재해.
내가 그간 여자로서의 부정받는 시간이 정말 길었어서
나 진짜 치유받는 거 같아.
내가 널 남자로 느끼는 거랑 별개로 네가 나 예뻐하는 얼굴로 볼 때, 진짜 진짜 좋아.
내가 너한테 그리 모질게 말할 수 없는 이유고
네 연락에도 꼬박 답장을 해주는 연유지.
그래도 너는 아닌 걸 보니, 모르지 뭐.
내가 지 팔자 또 지가 꼬려고 그러는 건지.
너 같이 좋은 남자 놓치고
또 이상한 거 어디서 주워가지고 자학 같은 연애나 하려고 이러는 건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
넌 참 좋은 사람인데,
훨씬 나은 사람인데,
나는 네가 남자로 좋지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