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상해 진물 뚝뚝 떨어지고 악취도 나는 자존심에게

by 윤지수

너는 여러 형태로 나의 꿈에 나와 나를 괴롭혔다.

꿈 속의 너는 매번 더 잔인하게 진화해있었고 어떻게 하면 나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야만 할 수 있는 짓들을 했다.

내 온갖 트리거를 건드리고, 트라우마를 찢어발겼으며, 끝내는 또다시 울게 했다.

참다 못한 뇌가 꿈을 깨어주고, 고개 돌려 시계를 확인하고, 손 끝의 감각이 들면, 그제서야 후- 하는 한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꿈이구나.

나는 그렇게 몸의 피로가 채 가시기도 전에 꿈에서 현실로 도망치곤 했다.

개운하지 못하게 잠에서 깨고 나면 다시 잠들기가 무서워 몇시든 간에 그냥 일어나 버렸다.

어떤 날은 새벽 두시에, 또 어떤 날은 아침 아홉시에.

수면이 들쭉날쭉해지는 일은 필히 건강에(몸이든 마음이든)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긴 하지만

꿈 속으로 돌아가는 일이 두려워 길게 잠들기가 여간 어려워야 말이지.

평소엔 꿈에서 꿈인걸 곧잘 눈치채는 나인데 어째서 네가 나오는 꿈들은 그렇게도 사무치게 현실 같을까.

아직도 네가 내 삶에 존재한다고 믿는 걸까, 미련하게.

아님 실은 내가 네가 보고싶기라도 한걸까, 자존심 상하게.

어느 쪽이든 별로인 건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첫 번째 문장을 다시 고쳐야긴 하겠다.

말은 바로 하자.

네가 나온 것이 아니라, 실은 내가 너를 꿈에 불러 스스로를 괴롭힌 거다.

어떻게 하면 나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지 잘 아는 방법으로 괴롭힌 것도 다 나다.

쪽 잠을 자게 한 것도, 너를 괴이한 형태로 그려내는 것까지도 모두 다 나.

그럼에도 첫 문장부터 내 꿈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네 탓을 버릇처럼 하고 있는 걸 보니 나는 그때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나 보다. 이기적이고, 독단적이고, 고집스러운 그 모습 그대로인가 보다.

그래, 그러니 네가 나를 버렸겠지.



오늘도 그렇게 잠에서 깼다.

그래도 오늘은 다행히 새벽해가 막 뜨기 시작할 때 쯤이라, 최소한의 수면 시간은 확보한 후였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아침이었다. 어젯밤 미리 준비해둔 운동복을 주워입고 물을 한 잔 벌컥였다. 물을 들이키며 아침 운동을 길게 해도 여전히 아침일 정도로 이른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크게 바쁜 일이 없는 날이라 잠을 더 설쳤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비몽사몽한 상태도 아니면서 이런 생각을 하다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라도 너를 꿈에서 만나 반가웠던 모양이다. 실은 무의식의 나만이 아니라, 의식 속의 나또한 너를 그리고 있었던 거다.


완전히 상해버려 이젠 진물도 뚝뚝 떨어지고 악취도 나는 자존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었다. 그리곤 중얼거렸다.




'보고싶어, 당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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