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꽃등이야 그것도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등

by 윤지수

[특별 대우]

지난 겨울, 아끼고 아끼다 결국 입지 못한 원피스를 이번 겨울엔 기필고 입고야 말겠다며 옷 장 가장 앞쪽으로 자리를 옮겨 걸어두었다. (딴에, 또 나름) 비싸게 주고 샀던 옷인지라 특별한 날이나 혹은 특별하고픈 날에 아끼고 아껴 짠! 꺼내 입어야지 했었다. 특별 대우를 해준 것인데 그것이 홀대가 되어버릴 줄이야. 오늘보다 기온이 딱 5도만 더 떨어지면 날이 특별하든 말든 입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5도가 올라 오늘과 같은 날씨가 올 때까지 자주자주 입어줄 것이다. 옷에게 내리는 특별 대우라 함은 역시 자주 찾아주는 것인데 스물여덟의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한 살 더 먹은게 여기서 이렇게 티가 난다.





[차별 대우]

미안하다는 말을 끝내 뱉지 않았던 그의 마음을 내내 골똘해보았다. 그는 내게 미안한 것이 없어서 그 말을 전하지 않은 것인지, 아님 미안하다는 말을 할 염치가 없다고 느꼈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미안하다는 말에 차별 대우를 하고 있는 것이려나. 아, 쓰면서 깨달았다. 마지막이 정답이다. 그러고보니 그는 미안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걸 까먹다니. 여전히 기억나는 순간들도 있으면서. 지난 여름이었다. 증명사진을 찍어 가장 먼저 그에게 사진을 보여주었고 그는 사진 속 내 피부가 자기가 알던 피부가 아니라며 (비)웃었다. 나는 예쁘다는 말은 못할 망정 무슨 평가냐고 따져들었고, 그는 자신의 말을 검열할 거면 말을 걸지 말라고 했었다. 미안하다고 하면 그냥 잊혀졌을 기억일 건데, 그는 끝내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고 나는 이것을 오늘에도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되었다. 그는 어쩌다가 미안하다는 말에 차별 대우를 하게 되었을까? 자존심이려나. 정말 알량한, 쓸모없는, 돈도 안 되는 그 자존심?





[꽃등]

최고의 칭찬이라- 그건 역시, 단연,결코! ....글쎄, 잘 모르겠다. 최고의 칭찬이 무엇이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냥, 대충 잘하고 있다고 하면 칭찬이지 않나? 거기에 최상급 '최고'가 붙으니, 엄~청 잘하고 있다고 하면 최고의 칭찬이지 않을까? 칭찬받았던 기억에서 점점 멀어지고 매일매일 칭찬을 줘야하는 입장이 되다보니 무엇이 좋은 칭찬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러니 최고의 칭찬이 무엇인가 고민을 해야겠지. 하루도 빠짐없이 칭찬을 해야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꼭 해야하는 고민일 테지. 일단은 지금 이 글을 쓰는 오늘에까지는 무엇이 최고의 칭찬인지 잘 모르겠으니 오늘 본 예능 프로에서 배운 순우리말 하나를 던지고 가겠다. 맨처음을 뜻하는 순우리말은 꽃등이다. 세 번째, 두 번째, 그리고 꽃등.


너는 나의 꽃등이야. 그것도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등.





[진짜 사랑]

이별통이라고 부르는 게 더 알맞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는 그 통증을 나는 웬만해서는 사랑통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사랑했어서 아픈 거고, 사랑하기에 이별도 슬픈 거라고. 그런데 어제 나와 차를 함께 마신 그는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뱉고, 사랑한다는 마음을 담아 미래를 계획하고, 언제나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기다리던 자신의 모습이 차갑도록 생경해지는 것이 이별이었다고. 진짜 사랑이라면 그런 모습은 없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이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런 것 같았다다. 분명 사랑에 빠져 죽어도 좋겠다 싶게 사랑하였는데 나 없는 그가 잘 지내지만은 않았으면 좋겠고, 나 다음으로 그가 만나는 사람은 나보다는 못난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맘 편히 맞는 아침도 최대한 더디게 찾아오길 빌었었다. 조금의 정적이 흘렀고, 우리는 동시에 같은 질문을 서로에게 던졌다. 그럼 우리가 한 건 가짜 사랑이었으려나요? 순간 분위기가 찹- 가라앉았다. 내 눈이 허공을 열두 번째쯤 가르고 있을 때, 그는 어정쩡한 자세로 더 어정쩡한 위로의 말을 꺼내었다. 어쩌면 진짜 사랑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에요. 우리가 가짜 사랑만한 해온 게 아니고,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이라는 형태는 그게 최선인 거죠. 그럼.. 우리가 앞으로 할 사랑의 형태도 그럴 텐데 우리 왜 오늘 마주 앉아 이렇게 이야기를 해야하죠? 어차피 진짜 사랑 같은 건 없는 건데요.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목끝까지 차 오른 이말을 나는 꾸역꾸역 집어 넣었다. 대신 그와 비슷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아, 정말, 네, 맞아요.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하하-라고 답했고, 마치 다음 각본이라도 있는 듯 우리는 빠르게 대화 주제를 돌렸다.


사랑도, 이별도 몇 차례씩 해본 사람들의 시작에 더는 설레임 같은 게 끼지 못했다. 이 사랑은 대단할 거고, 이 사랑은 다를 거고, 이 사랑은 … 하는 낭만적인 것들에게 내어줄 자리가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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