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물면, 너도 물릴 거야
일자리를 다시 구해야 하는 요즘은, 막연하게 “만약에” 게임을 해본다.
‘만약에, 퇴사했던 회사에 다시 다닐 수 있다면 어떨까?’ 매번 고민해도 답을 내리기 만만치 않다. 그런데 1월 초, 적당히 뭉개놓은 대답을 뾰쪽하게 해야 할 연락을 받았다.
김대리님 안녕하세요?
oo회사 ooo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았나요?ㅎ
바쁠 것 같아 전화 말고 문자 드렸어요
편할 때 전화 한번 부탁드려요
김 대리라. 그 호칭,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내가 좋아했던 호칭이었다. 그 회사에서는 아직 나를 김대리라고 부르는구나. 퇴사하고 2년 만에 무슨 일일까? 궁금하면서도 걱정됐다. 혹시나 내가 잘못했던 업무가 있었나? 내 책임이 있다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 추측에 상상만 더해졌다. 이유가 무엇이든 전화로 대응하기가 어려울 거 같아 카톡으로 물었다.
카톡을 보낸 전전 직장 상사는 본인의 업무가 변경되어 충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상사, 본인 자리의 재입사 제의였다. 내가 그 회사에서 나왔을 때가 대리 말이었는데, 지금은 차장 업무를 맡긴다는 거구나. 퇴사한 대리에게 제안하는 차장 업무라. 참 매력적이지 못한 자리다.
그때 그 업무, 그 사람의 스트레스가 잊힌 듯했는데, 어렴풋이 기억나 일기장을 찾아봤다. 이렇게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록이 남아있어 다행이다. 주관적이지만 그때를 더듬어 볼 수 있는 흔적이 있어 다행이다.
일기장 속, 나는 한마디도 지지 않는 부하 직원이었다. 물리면 똑같이 무는 직원이었다. 성숙했다고 믿었던 그때, 서툰 감정투성이였다.
[2019년 8월 9일]
퇴근하면서 팀장한테 인사했다. ‘다음 주 여름휴가 다녀와서 보자고’
팀장이 요즘 힘들었는지 본인은 아예 안 나올 거라고 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고 쿨하게 퇴근했다.
[2019년 10월 16일]
이 부장이 회의실에서 원가 관리 내용을 팀원들에게 공유했다.
결론은 매입 계산서 관리를 나보고 하라는 거였다. 화가 났다. “그럼 딱 그 일만 해야 한다고, 지금은 잡일도 엄청 많다"라고 대꾸했다.
계산서 관리도 마무리가 안됐는데, 팀장이 퇴사한 김 부장 업무도 나한테 넘기려고 했다. “그럼, 부장 직급이랑 월급도 줘야 한다"라고 되받아쳤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져도 이 회의는 끝날 생각이 없다. 5시 58분에 말했다. “김 대리 퇴근해야 하니 일어나시지요”
나는 퇴근했고, 이 부장과 정과장은 사무실 대신 옥상으로 올라갔다.
[2020년 3월 3일]
아무도 참여하지 않을 제안서 리뷰를 2시~4시 반까지 했다. 아오, 또 쓸데없이 수정을 하는구나. 덕분에 야근 확정이다.
자리로 돌아왔는데 오후가 다 갔다.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야근할 때는 결재받아야 한다는 공지가 떴다. 이제 법카로 저녁도 제대로 못 사 먹게 되었다.
본부장이 야근을 독려하듯 “밥 먹을 거면 내 카드로 먹으면 되지!” 했다. 그 모습이 꼴 보기 싫어 말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본부장 자리로 가서 밥 먹게 법인카드 달라고 했다. 회삿돈을 어떻게든 써야 한다는 일념 하나였다.
그냥 해본 소리에 내가 진짜 와서 놀란 기색이었다. 본부장 법인카드로 강강술래에서 소고기 사먹었다. 소고기 맛있었다.
[2020년 11월 30일]
일주일 만에 정시 퇴근이다. 타 부서 부장이 계약서 달라고 하면서 “그게 있어야 김 대리를 괴롭히지” 하더라.
”김 대리 빠이, 짜이찌엔 할 테니 나중에 오 대리나 박 대리가 오면 그때 괴롭히세요” 하니 아무 말 못 하더라.
재입사한다면 내 업무는 후임(예전 내 업무) 케어+ 상사(차장)의 업무가 될 거라고 했다. 근무 중인 직장동료에게 내부 사정을 들어보니, 이건 스카우트 제의가 아니라 집 나간 노비를 쫓는 추노꾼의 덫이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후임들이 계속 그만두면, 2년 만에 다시 내 차례가 돌아오기도 한다.
이건 덫이다. 허나 원래 직장이란, 월급이 매달려 있는 덫이 아닌가. 실제로 재입사한 부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녹록지 않은 본부 사정을 말씀해 주시며, 끝에 덧붙인 말이 “좋은 결정하셔요”였다. 그 말에는 재입사의 긍정도 부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러나 아로새긴 듯 내게 전달됐다.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덫일 것 같다.
상대방을 괴롭혀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법은
어린아이였을 때는 효과가 있지만, 어른의 세계에서는 치명적이다.
일자샌드 <서툰 감정>
일기장에 묻어두었던 나의 치명적이고, 서툰 감정을 바라본다. 나는 그때, 물리면 똑같이 물어주었다.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그게 회사에서 나를 지키는 최선이었다. 나는 치명적인 방법을 이용해 회사에서 버텼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도 나와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버티기 위한 방법이 서로에게 치명적이었다.
그래도 소름 끼치도록 싫은 직원은 아니었는지 재 입사 제의를 받고 내심 기뻤다. ‘나는 못되기도 했으나, 같이 일할만했던 직원이었구나’ 연초에 받은 추노의 카톡이 덫에서 도망친 도비에게 위로가 됐다.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 있다. 내가 파트장일 때, 내 파트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는 알게 모르게 그들의 배려를 받고 지낸 김 대리였을 것이다. 겪어야 아는 것들이 아직도 많은 나날이다.
김대리는 2년 전 이미 빠이 짜이찌엔 했고, 지금 그 자리에 있을 오 대리나 박 대리는 물거나 물리지 않고, 그저 무탈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