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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Mar 02. 2023

다 괜찮지는 않겠지

위로의 덮개 :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나는 이런 식의 위로가 싫다.




한동안 친구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나조차 정리하지 못한 내 이야기.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이 긴 하소연의 마무리는 친구가 가볍게 던진 한 마디로 급하게 포장된다. 가까운 사람에게도 통하고, 낯선 사람에게도 통하는 이 위로는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된다. 내 걱정이 코에 붙었는지, 귀에 붙었는지 상관없는 이 위로가 싫다. 힘들게 꺼내놓은 고민을 순식간에 덮어버려서 싫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이제 우리 사이에 근심과 고민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네가 꺼내놓은 위로의 덮개만 덩그러니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지. 저 덮개만 걷어내면 그 아래 지리멸렬한 불안함은 그대로라는 걸.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일일이 끄집어낸 걱정과 네가 건네준 위로의 덮개까지 챙겨 왔다.


네가 내 코에 걸어준 위로의 말을 하나씩 헤집어본다. “다”, “잘”, ”될 거야”

그러니까 모든 것이 제대로 이뤄진다는 말이지. 그건 나의 바람이자, 너의 갈무리이며, 우리들의 터져버린 김밥이다. 급하게 마무리하다가 옆구리가 터진 김밥. 같은 김밥 재료인데도 터진 김밥은 이상하게 맛이 없다. 정성이 부족해 터진 것도 아닐 텐데, 꾹꾹 눌러 잘 싸려던 너의 김밥은 보기 좋게 터져 맛이 없다. 적당한 위로의 말을 찾다가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또 터져버린 김밥을 꺼내야겠지. 그럼 나도 준비된 인사말을 내밀 거야. 안심한 듯 멋쩍은 미소로 건네는 내 답례품. ‘고마워, 그랬으면 좋겠다.’ 이제 내 걱정과 너의 위로가 겸연쩍게 겸상을 하겠지.


떠나려는 너의 위로를 불러 세운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근데 마법 같은 이 주문을 우리 같은 일반인이 써도 효과가 있는 걸까?

만약, 내가 다 잘 될 거라는 말로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너의 위로는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상상하는 것 같아. 나의 사막에도 오아시스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잘 될 거라는 너의 말로 사막에 물을 길러야겠지.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나는 있잖아, 그럴 거 같지 않아. 그저 다 괜찮진 않겠지. 너의 위로처럼, 노래 가사처럼 다 잘 되진 않을 거야.

괜찮은 것은 괜찮게, 괜찮지 않은 것은 여전히 괜찮지 않을 거야.


혼자 앉아 내게 위로를 건넨다. 우리 사이에 필요 없는 덮개는 걷어낸다.


‘아마 다 괜찮지는 않을 거야, 다 잘 되지는 않을 거야.

그러나 삶은 계속되겠지.

아마 완벽하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괜찮지 않음을 인정하고, 해결하면서 살면 돼.

그게 인생이지. 우리 모두 그런 인생을 살고 있지.‘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때마다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거예요.
겪어내야 내면의 힘이 생겨요.
만약 일이 생기면 상황에 맞게 타당하게 처리하며 살면 돼요.
언제나 인간은 살면서 내 눈앞에, 내 발 앞에 당면하는 문제들을 ‘완벽하게’가 아니라,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가 아니라, 합당하게, 타당하게, 합리적으로 해결하며 사는 거예요.

오은영 박사님 <금쪽 상담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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