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올림픽의 마지막은 언제나 마라톤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되었다는 공통점 이외에 체력뿐 아니라 정신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 마라톤은 올림픽을 대표하는 종목이라고 할만하다. 종교, 인종, 정치적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는 올림픽 정신에 입각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는 일체의 정치적, 종교적, 상업적 선전과 메시지를 금하고 있다. 시상식이 폐회식 도중에 거행되는 마라톤에서 일련의 정치적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은 올림픽 정신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번 리우 올림픽 마라톤 은메달은 에티오피아의 페이사 릴레사 선수이다. 결승선에 도달하며 두 팔을 엇갈려 'X'를 그린 그는 시상대에 올라서도 다시 한번 'X'를 펼쳐 보임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언론에 말할 기회를 얻게 된다.
릴레사는 에티오피아의 오로미아 족이다.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이 나라 최대의 종족이지만 오랜 기간 정치, 경제적으로 소외, 차별받아 왔으며 지난해 11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오로미아 주 일부 도시들을 수도 아디스아바바로 편입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로 인해 전통적으로 소유해 온 땅을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에티오피아는 인구 구성 2위인 암하라 부족이 엘리트 집단으로 국가 권력과 자원을 장악하고 암하라어가 공용어이다)
문제는 에티오피아 정부가 오로미아 족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는 것이다. DPA 통신(독일의 주요 뉴스, 통신사)에 따르면 "오로미아 지역에서 반정부 시위를 펼치다 1천 명 이상이 죽거나 감옥에 갇혔다"라고 한다.
이에 릴레사 선수는 "에티오피아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을 반대한다. 나는 평화적인 시위를 펼치는 반정부 시위대를 지지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어눌한 영어로 "반정부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단지 자신의 권리와 평화, 민주를 원한다"라고도 덧붙였다.
사실 에티오피아의 내부 상황은 잘 모른다. 아프리카 부족 간의 다툼이 국가 내에서도 상당하다는 점은 이미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폭력으로 해결하는 것을 지지할 순 없는 노릇이다. 권력을 장악한 암하라 족과 소외되어 온 오로미아 족은 각각의 이유는 있겠지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물리적인 폭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릴레사 선수의 발언이 설사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근저에는 폭력 앞에 놓여 있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 있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보다 중요한 원칙은 있을 수 없다. 정치적, 종교적, 상업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올림픽 정신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유지한 위에서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어쩔 수 없이 2014년에 한국을 방문하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떠올린다. 참혹한 세월호의 슬픔이 이상한 방향으로 변질되어 갈 때 즈음 단 한 마디로 우리 사회를 다시 깨어나게 하셨다.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릴레사 선수가 이번 발언을 통해 은메달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 기계적인 수평을 달성하는 것이 올림픽 정신인지는 IOC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얼마든지 판단해 볼 수 있다. 올림픽 정신은 몇몇 사람들의 일방적 결정이나 단순한 문헌만으로 대변될 수 없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때만이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이사 릴레사 선수의 평화 세리머니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