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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엽 대만은 지금 Apr 08. 2021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보다가


“민중들이여! 나를 따르라!”


들라크루아의 작품 ‘민중을 이끄는 여인’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나폴레옹이 떠올랐다. 나폴레옹은 1821년 5월 5일에 사망했다. 이 그림은 1830년 7월 혁명을 묘사한 것이다. 나폴레옹 후임인 루이 18세의 동생 샤를 10세가 프랑스 황제가 되었을 때다.


나폴레옹과 그림 속 이 여인의 신분은 대조적이기는 하지만 ‘역동’이라는 면에서 공통점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목표를 쟁취하기 위한 모습은 매우 역동적인 느낌이다. 짙은 색감이 역동성을 더한다.


그림 속 인물들을 살펴 보면 매우 흥미롭다. 


이 여인은 깃발을 들고 자신을 따르는 군중을 돌아 보고 있다. 가슴이 밖으로 나와도 부끄럽다거나 수치심을 느낄 새가 없어 보인다. 보는 이의 입장에서 선정적으로 전혀 보여지 않는다. 들라크루아가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의 시선을 이 여자에게 고정시키 위해 사용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여인이 서 있는 길 위이는 시체들이 쌓여 있는데 희생된 이들로 보인다. 피아를 불문하고 자유라는 이름 하에 희생된 이들이다. 그림 전체에서 이 여인이 가장 높은 곳에 있어 마치 여인이 위로 비상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이 여인은 현지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를 위로 치켜 들고 있다. 삼색기는 자유, 평등, 박애를 의미한다. 들리크루아는 이 세 가지를 그림에서 최고의 가치로 드높이고자 한 것 같다.


절대왕정을 꿈꾼 샤를 10세는 1830년 7월 실시한 선거에서 완패를 당한다. 결과에 굴복하는 대신 언론 탄압 및 선거 참여 자격 제한 등의 저치를 실시한 새를 10세는 다음달 폐위됐다.


이 여자의 옷차림은 이러한 혁명적 시위와는 거리가  멀다. 이 여자의 옷차림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내 눈에는 편하게 입는 옷을 입은 채 황급히 뛰어나와 시위에 앞장 선 모습으로 보인다. 이는 옷을 갈아 입지 못할 만큼 왕권 전복이 시급하고 중요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들은 말에 따르면, 이 작품 속 여인은 빨리하다 혁명에 참여한 여인에세서 영감을 얻었다. 그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았는데, 정부군이 남동생을 살해했다. 이에 분노한 그는 혁명에  참여했다가 목숨를 잃었다.


이 여성은 동생이 정부군에게 살해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러한 그림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그림 속 여인은 로마시대에 자유를 얻은 노예가 썼던 모자를 쓰고 있다. 얼핏 보면 그냥 머리 같기도 하다. 이 여인은 미국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가 미국 독립전쟁 100주년을 맞아 기념으로 선물했다. 


이 여자 뒤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개성 넘친다. 직업도 가지각색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그림 속 인물들이 내게 던진 의문점들에 대한 답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는 서양 미술 전문가가 아니다. 


1. 여자는 가슴을 노출하고 있다. 왜?

서양 미술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나체의 모습으로 신이 묘사된다. 반드시 벗어야 신이라는 법은 없지만 말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림 속 여자는 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서양 미술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신들은 곱고 탱탱한 피부에 부드러운 몸매를 지니고 있다. 인간의 모습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형상을 하는 것이 일반 적이다. 하지만 그림 속 여자는 그러한 신의 완벽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피부도 거칠어 보이고, 뺨도 그렇다. 심지어 겨드랑이에 털도 있다. 체격은 아름다운 곡선 대신 강한 남성을 떠올리게 한다. 위엄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점을 곱씹으면 신이 아닌 사람으로 보인다. 


자유를 위한 혁명을 실현하기 위한 여신을 나타내고자 함은 아니었을까?


2. 여자 아래 죽어 있는 남자는 바지를 벗고 있다. 왜?

누가 이 남자의 바지를 벗겼을까? 그림을 보면서 궁금해졌다. 어쩌면 화가는 그를 혁명가로 묘사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시민에게는 영웅이지만 정부에게는 역적이다. 시체가 되어도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 당한 모습을 그리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3. 파란색 상의를 입은 남자는 여자를 우러러 보고 있다. 왜? 

여신을 우러러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혁명의 성공을 애타게 갈망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다. 당시 시민들의 모습을 그리고자 한 것은 같다. 또한 화가는 이러한 혁명을 드높이기 위해 화가는 남성이 위를 향해 여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4. 우측 하단의 죽은 남성들은 정부군일까? 

여성을 기준으로 우측 하단에 남성 둘이 있다. 역시 죽어 있는 모습이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 남성을 보면 상의가 정부군의 옷 같다. 또한 상의 어깨 부분을 보면 높은 직책 같기도 하다. 그의 하체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왼발에는 신발을 신고 있지만 오른발에는 신발이 없다. 발가락이 드러난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오른쪽을 보면 검은 제복을 입은 남자가 죽어 있고 그의 머리 앞에는 정부군으로 추정되는 검은 모자가 나뒹굴고 있다. 이를 통해 시민들의 희생이 왕정을 전복시킨 혁명이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5. 그림 속 등장한 무기들은 같은 무기가 없다. 

혁명가로 묘사된 인물들 중 역동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들을 보면 무기를 하나씩은 들고 있다. 이들이 들고 있는 무기는 제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또한 다양한 계층들의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에 의해서 왕정에 대한 투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또한 누구나 함께 혁명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들라크루아는 이 작품에서 특정 장면을 묘사하지 않았다. 그는 작품을 통해 당시 상황을 보여주며 중요성을 부각시키고자 했으며, '민주'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그림 속 인물들에게 투영시킨 것 같다. 그리고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혁명의 주인공은 특정 권력자가 아닌 '민중'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그 속에는 '영웅'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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