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동안 빼지 않던 반지를 뺐다.
어릴 적에 엄마는 금가락지를 3개 세트로 가지고 있었다.
언니 하나, 나 하나, 그리고 엄마 하나. 이렇게 한개씩 나눠가졌다. 다들 그 반지를 어떻게 했는지 지금은 모르지만 현재까지 끼고 있는건 나 하나이다. 그도 그럴게 엄마에게 처음 받은 귀금속 이라는 의미도 있고, 첫 반지라는 의미도 있고, 그냥 뺄 이유를 딱히 찾지 못해서 받은 이후로 오늘까지 한번도 뺀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헐렁해서 쑥쑥 빠지던 반지가 내가 자라면서 딱 맞게 되었고, 각종 약들에 절여지고 살이 찌면서는 딱 맞다 못해 빠지지 않게 되었을 때에도 딱히 빼려는 노력이나 시도없이 계속 지내왔다.
그러다가 수술을 앞두고 손발이 많이 부을거라서 반지를 모두 빼야한다는 주의를 들었다. 집에와서 혼자 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다 하였다. 비누, 오일, 실을 이용한 반지 빼기, 등등등. 할 수록 손가락이 부어올라 더이상 시도조차 할 수 없어지는게 손 댈수록 악화되는 내인생 같구나 싶어서 울고싶어졌다. 슬슬 눈물이 앞을 가릴때즈음 그때 119가 반지를 끊어준다는 검색결과를 보았고, 사례가 적지않음을 알았다(그 말은 내가 가도 그다지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길로 119에 달려갔는데 문은 잠겨있지, 후문도 막혀있지, 나는 답답하지, 유리문을 통통 두들기자 구급대원이 나오셨다. 분명 어이없어 하실테지만 나도 진지한 상황어서 어쩔수없이 상황설명을 하였더니 반지절단기를 가져오라는 지시와 함께 4명이나 되는 대원들이 장비가방을 각기 가져왔고 사무실에서 절단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두둥.
아프냐는 나의 겁찐 질문에 안아프다고 이야기하시면서 반지 소재를 여쭤보셨다. 금이라고 하자 그럼 잘 잘린다고 안심시켜주시고는 손가락을 보호하는 철 보호대를 넣고 반지절단기로 보이는 니퍼? 뻰지? 같은 걸로 자르는데 그 와중에도 ‘어어어 누르지 말고’ 하면서 나의 부르튼 손가락에 대한 안전을 걱정해주셨다. 그런데 쉽게 잘리지 않자 금이 맞냐고 물어 보셨고 18k요오…. 하면서 두려움과 민망함에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더니 다들 웃는게 느껴졌다. 그래도 그게 나쁘지 않은 유쾌한 웃음이라서 따뜻함이 느껴져 덜 민망했다. 그사이 반지는 각각 위, 아래 두번 잘라져서 나는 15년 만에 반지를 벗었다. 반지를 벗고 보니 대략 15명이 넘는 구급대원 모두가 나를 둘러싸고 구경하고 계셨다. 이런 일이 분명 인터넷에서는 많다고 했는데! 주목받을 만한 일이었다니!
목 뒤까지 벌게지는걸 느끼는데 한 대원분이 이렇게 겁이 많아서 어쩌냐고 (고개도 돌리고 눈도 못 떴다. 나는 겁이 많기로는 어디서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렇다. 이건 부정할 수 없다) 웃으시는데 감사합니다아…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연신 꾸벅꾸벅 인사하며 잘린 반지를 꼭 쥐고 나왔다. 나중에 공임을 맡겨 다른 반지로 재탄생 시켜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나오고 나니 편의점이 눈에 보였다. 오밤중에 어처구니 없는 일을 구경하게 되신 대원 분들이나, 이런 일에도 진지하게 대응해주시며 안전하게 처리해주신 대원분들께 죄송스럽고 고마워서 들어가서 음료수를 사다가 아니라는 분들께 억지로 안겨드리고 돌아왔다.
15년 만에 이렇게 벗게 될 줄은 몰랐던 내 일부. 내 조각을 보며 한때 사진 속 손을 이 반지로 내 손인걸 다들 알아보던 때도 있었는데 싶고. 왠지 미련이 반토막 난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반지가 다른 반지로 재탄생하는 것과 인생의 새출발이 맞물리는게 정말 내 일부라서 이런 운명을 맞이한걸까. 괜한 의미부여를 해본다.
15명이나 되는 구급대원에 둘러쌓이는 것 까지는 예상밖이었지만 반지가 안빠질때는 119에 가시면 신속 정확 안전하게 제거가 가능합니다. 오늘의 꿀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