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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갱 Aug 05. 2023

미움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우울증 환자가 느끼는 미움. 그 시꺼먼 마음.

참 밉다.

이 생각이 하루 종일 들었다. 아니, 요 근래 계속 참 모든 것들이 미웠다. 왜 미운지, 왜 화가 났는지, 생각해 볼 여유조차 없이 모든 것들이 미웠다. 큰 소리로 울어제끼고 싶고, 무어라도 떼를 쓰면서 내 부정적 감정을 폭발시켜버리고 싶고, 단순한 우울함과는 달리 대상이 있는 부정적 감정에 갇혀있다.


수술실에서 혈관이 막혀서 엉엉 울면서 여기저기 바늘에 쑤셔진 것도 서럽고, 수술중에 부정맥이 와서 다시 재검사가 필요해 이 폭염에 발걸음한 것도 서럽고, 그 와중에 피수치가 너무 낮아 철분주사를 맞는데 약이 혈관에 안들어가서 자꾸 펌핑을 해야하는데 너무 눈물나게 아파서 울어버린 것도 서럽고, 결국 쓰러져죽으면 죽었지 저 주사를 더는 못 맞을 것 같아서 그만 맞겠다고 엉엉 울면서 부탁하고 바늘을 뽑아던지고 나온 것도 서럽고,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서도 택시비를 아끼겠다고 긴시간 진땀을 흘리며 버스를 꾸역꾸역 탄 것도 서럽고, 집에 와서는 계속 떨어지는 컨디션에 제대로 눕지도 앉지도 못하면서 아픈것도 모두 서럽고 서럽다못해 세상전부가 미워져버렸다.


밉다는 건 좋다는 감정이 그나마 들어가 있어서, 기대를 했는데 실망해서 드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서 실망하고, 그럼에도 그 서운함은 나 혼자만 가져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쓸쓸함과 외로움이 상대방에게 미워! 라고 소리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미움은 그게 아니었다. 주사를 제대로 놓지 못하는 간호사에 대한 미움도 아니고, 부정맥의심에 안전하게 다시 검사하자고 이 폭염에 부른 의사에 대한 것도 아니고, 시커멓게 든 멍자국처럼 시커멓게 뒤틀린 마음에서 나오는 악취같은 것이었다. 적나라하게 얘기하면 왜 나만 아파야해? 왜 나한테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데? 왜 나는 주사하나 똑바로 못맞는 혈관인데? 왜 나만? 왜? 왜? 왜 나는 이 여름에 다들 더워도 잘만 걸어다니는데 왜 나는 그게 안되지? 왜? 남들도 다 덥잖아 근데 왜 나만 유난이지? 왜? 왜? 라는.

왜 남도 나만큼 불행하지 않냐는, 왜 남도 나만큼 아프지 않냐는 억울함에서 일어나는 미움이었다. 미움이 파도처럼 쏟아져내려 숨이 막혀오고 세상이 뒤집혀졌다. 눈물만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이대로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데 안 죽는다는 것도 알고 있어서 더 내가 미웠다. 차라리 죽기라도 하던가. 죽지도 못하고 이렇게 죽을 것 같은 고통은 대체 뭐란 말인지. 결국 정확히 뭐가 미운지도 모른채 이런 상황도 밉고 이런 나도 밉고, 이런 고통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로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미워진다. 미친사람처럼 사방팔방으로 미움의 화살을 돌리다가 결국에는 모두 나에게 와서 꽂힌다.


그럼 너따위가 왜 살아가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데?

라는 질문으로.



돌던진 놈은 잘 살고 돌 맞은 놈이 병원가고, 그 병원가는 돌 맞은 놈은 또 그 돌이 날아가던 자리에 하필 자기가 있었다고 자책하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미워하게 된다. 그렇게 시커멓게 배어나오는 미움이라는 감정은 참 사람을 못나게 만들어서 나보다 나은 모두를 한순간 엄청난 감정으로 미워하게 만들어버린다. 이 미움에서 한 끗만 더 나가면 저주가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다시 마음을 잡아봐도 시꺼먼 마음은 도무지, 도무지 빨아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미움을 감춘다. 차라리 우울해하자, 라며 자리를 펴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눈을 닫고 귀를 막는다. 생각을 멈춘다.



약을 먹고 한참 멍하게 있다가 하고싶은 것이 하나 생겼다.

이런 시커먼 미움이 아니라,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내가 실망해서, 좋아하는 마음은 있지만 그래도 서운한 마음으로, 그런 마음으로 ‘밉다’ 라는 말을 써보고 싶다.

남들도 다 나락에 빠져버렸으면 하는 그런 미움이 아니라, 누가 있건 없건 그저 세상을 저주하고 싶은 그런 미움이 아니라, 좋아하고 기대하고 실망하며 미워하고 싶다. 그런 미움도 역시 속상한 감정이겠지만 조금은 더 알록달록한 속상함일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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