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느끼고 괴로워지느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괴롭지 않아지느냐
정신과 약을 먹어온지 멋대로 단약한 기간을 제외하고도 10년이 넘는 긴 시간이 지났다. 시작은 삼성병원이었고, 그 이후 소개를 받아 다른 선생님과 EMDR 치료를 받으며 약물치료와 상담을 병행하였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그때 만나던 사람은 내가 약을 먹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정신병자 같다는 말을 수도없이 하며 싫다는 의사표현을 하던 터라 작아질 대로 작아진 나는 임의로 단약을 하게 되었다. 병원의 연락을 받지 않았고, 가족의 걱정도 뒤로 한 채, 술에만 의존하고 자기파괴적인 행동이 늘어났다. 그 당시 나는 그것이 내가 스스로 선택한 행위로 자유로운 행위라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자기파괴적인 또다른 종류의 자해였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 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번 중단된 상담이 다시 이어지는 것은 처음 시작 하는 것 보다 몇 배의 용기가 필요했다. 이미 패턴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왜 중단했는지, 왜 다시 시작하는지, 끝없이 이어질 '왜'라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만 했고 그 질문에 떳떳하거나 자랑스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다시 찾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찾을만큼 간절한 사람만이 '왜' 라는 질문에 어떻게든 대답을 찾아가며 도움을 요청한다. 죽기 싫어서, 혹은 죽을만큼 힘들어서, 아니면 더이상 어찌할 바를 몰라서.
나는 삶을 이어가야만 했기 때문에 이어지는 '왜'를 받아들이고 답변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미 그때는 공황장애가 다시 시작되어 일을 하면서도 목을 조르는 질식의 느낌에 애써 고개를 돌려 숨을 골라야 했고, 눈 앞이 깜깜해셔 쓰러지기를 몇 번하면서도 그저 컨디션이 안 좋다는 말로 말을 돌리고, 끝없이 쏟아지는 눈물에는 반려견 핑계를 대면서 화장실 변기에 앉아 빨리 이 모든 것이 끝나길 기도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단순한 1인가구 가장이 아니었고, 1인 1견 가구의 가장인 이상 이 상태를 방치할 수도 없었고, 일을 더이상 지속할 수 없을 만큼 상태도 악화되어 갔다,
조금 괜찮은 정신의학과는 초진 예약만 오래걸리면 두세달, 빠르면 한두달이 걸린다. 내가 다니던 곳은 이제 너무 멀기도 하고 금액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으며, 상담치료가 아니라 약물치료만을 원하는 나에게는 맞지 않아서 여러모로 알아보다가 한 곳을 정했고, 한 달 정도의 대기시간이 있었다. 지옥같은 한달을 보낸 후 초진을 받고 교감신경과 자율신경계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라는 진단과 함께 고도의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심각하다는 판정을 받고 1년 이상의 휴식을 권고받았다. 말이 쉽지, 1인 가구의 가장은 쉬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차라리 답답해도 부모님의 그늘아래 컸다면 또 몰라도 가장은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하기에 가장인 것이다. 또 이러한 상황을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휴직권고 소견서를 들고 약을 한가방 받아들고 나오며 '아, 이제 시작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직을 하고 충분히 쉬지 못한 채 입에 풀칠은 해야 하니 중간에 프리랜서로 일을 한 것이 더욱 독이 되어 약은 점점 증량이 되어갔고, 이제는 약없이는 단 1분도 눈을 감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놓여졌다. 손은 글씨를 쓸 수 없을 정도로 떨려갔으며, 작은 소리에도 날카롭게 반응하게 되었고, 전철을 타는 것은 약을 한웅큼 먹고도 비상약을 먹고 가방에 물과 약을 반드시 넣고 심호흡을 몇번이나 한 후에나 약간은 정신이 반쯤 나간 시체상태로 실려가는 것 외에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사람과의 관계가 극도의 공포로 치닫는 반면에 반려견과의 관계는 세상 무엇보다도 단단해져갔고 나의 작은 우주가 반려견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갔다.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갔다. 유일하게 손을 떨지 않는 순간이 나의 작은 반려견을 쓰다듬을 때였고, 유일하게 용감해질 수 있는 순간이 나의 반려견과 함께 세상에 나와 있을 때였다.
글을 쓰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초등학생때는 대회에 나가면 상금을 주기 때문에 어린 마음에 열심히 썼었고, 중학생때 부터는 그냥 쓰는 것이 좋아서 썼었고, 고등학교때나 대학교 때에는 그저 나를 위해서 썼다. 일기든, 소설이든, 닥치는 대로 내가 쓰고싶은 이야기들을, 나의 마음들을 적어내려가면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혼자가 아닌 기분이었다.
하지만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 부터는 글을 쓰는 것이 하나의 싸움이 되어가고 있었다.
약을 먹으면 좋았다. 괴롭지 않았다. 슬프지도, 절망스럽지도 않고 고통스럽지 않았다. 죽고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동시에, 즐겁지도 않았다. 기쁜게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웃는 일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그저 일기를 쓰려고 해도 단순한 사실 나열 외에는 쓸 말이 없었다. 내가 어땠는지 모르겠었다. 어떤 일이 있었더라도 그래서 뭐? 아무 의미가 나에겐 없었다. 아무 느낌이 없었으므로.
반대로 약을 먹지 않으면 어떤 글이든 멈추지 않고 써내려 갈 수 있었다.
주제만 잡으면 엉성하더라도 초안을 완성하는데에는 멈추지 않고 쭉 써내려가고, 다시 검토하면서 문장을 고치고, 다듬어볼 수 있었다. 강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주로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 안에서 소중함을 찾을 수 있을 때도 있었고, 작은 감사를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폭풍같은 감정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그 감정을 기술하다보면 내 감정의 원인도, 정체도, 그리고 그것을 온전히 견뎌야했던 나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을 오롯이 받아내야 하기에 너무나 괴로웠지만 적어도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우울증 약은 그런 의미였다.
모든 것을 느끼고 괴로워지느냐, 아니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괴롭지 않아지느냐의 선택이었다.
물론 약은 꾸준히 제때 먹어야 효과가 있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숨만 쉬는 인형같은 상태로 살아있는 것도 삶이라면 전혀 아무런 고민없이 약을 꾸준히 제때 잘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싶기에, 웃고도 싶고 실망도 하고 싶고, 슬퍼하더라도 내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싶기에 폭풍속에 무방비상태로 자꾸만 뛰쳐나간다.
비에 쫄딱 젖은 생쥐꼴이 되어서 엉망진창이 되어서 돌아올 것을 알더라도 한사코 다시 나가고, 후회하고 절망하며 다시 돌아오고, 다시 기운이 차려지면 또다시 나간다.
언제쯤 이 바보같은 싸움을 멈추게 될까.
오늘도 한참을 괴로워하다 뒤늦게 약봉지를 부스럭 거린다.
모든 것을 느끼고 괴로워지느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괴롭지 않아지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