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광대스러움에 대하여
2014년 12월 이른 아침.
많이 들을 일이 없어 낯선 집 인터폰 소리.
곧 아이를 깨워야 할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혹시 인터폰 소리에 깰까 싶어 조심스럽지만 잽싸게 받아보았다. 저 멀리서 들리는 희미한 음성.
“000 씨 되세요?”
보통 인터폰으로는 아파트 관리실이나 경비실에서 연락이 오는 것이고, 그럼 통상적으로는 “0000호죠?”라고 물어보지 않나? 역시 이른 아침 인터폰이 울린 거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내 이름이 맞았으니까 맞다고 대답을 했다.
“지금 여기 00 대학교 응급실입니다.”
아니다
“지금 여기 00 경찰서입니다.”
라고 했었나. 사실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응급실이든 경찰서든 좋지 않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000 씨 따님 되시죠? 아버님이 지금 여기 있습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과 목소리. 뚝하고 내려앉는 심장. 다리에 힘이 풀려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엄마에게 연락을 해야 하고 곧 아이를 깨워 문도 채 안 연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는 출근을 해야 했으니까.
그 일이 있기 전인지 후인지 한번 그런 적이 있었다.
7시에 곤히 자는 아이를 깨워 옷을 갈아입히고 간단히 요기를 시키고 세수와 양치를 시킨 후 둘러업고 차에 태워 7시 40분에 어린이집 남자 원장님과 접선해 아이를 넘기고 나는 올림픽 대로를 달려 강남으로 출근하던 시절. 천만다행으로 너무나 인품이 좋으신 원장님 내외 덕분에 그렇게 이른 시간에 아이를 넘기고 거의 12시간 후 다시 만날 때까지 아이는 구김살 없이 잘 지내주었다.
아무튼 7시 40분에 원장님을 만나야 하는 나는 그날 무슨 생각에 잠겨 있었던지 아이를 옆자리에 태우고 그대로 올림픽 대로를 타고야 말았다. 7시 45분쯤 아니면 조금 더 늦게 원장님에게 온 전화를 받고서야 지금 내 옆자리에 있으면 안 될 아이가 나와 함께 있음을 깨달았다.
순간 고민을 했다. 그냥 이대로 아이를 데리고 출근을 할까. 아니다. 그냥 이대로 아이를 태우고 어디 다른 데로 가버릴까. 아니다. 그냥 이대로 아이와 함께 사.라.져.버.릴.까.
하지만 다시 정신줄을 붙잡고 가장 빠른 출구로 올림픽 대로를 빠져나와 늦었다는 것만 빼면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남자 원장님의 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는 다시 출근을 했었다. 그날 지각한 회사에서 나는 시작부터 고개를 숙여야 했고, 그러면서 하루 종일 혹시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지는 않을지 마음을 졸였고, 퇴근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것도 같다.
아마도 그 아침 인터폰을 받은 후였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응급실 아니면 경찰서에서 새벽에 발견된 나의 아빠는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 요양원에 묶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