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이란 말이 생소해졌다. 명예퇴직이라면 모를까 정년퇴직이라니. 뉴스에선 한창 일 할 나이인 40대도 명예퇴직 대상자로 신청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뉴스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설령 회사가 나를 명예퇴직 대상자로 취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회사가 내가 정년이 될 때까지 있어줄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의심이 든다.
급변하는 요즘 시대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다니는 회사는 본인이 원하면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 곳이다. 근속 25년 20년인 직원의 비율이 이미 상당하고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경제 불황과 명예퇴직, 파이어족, n잡러의 시대에 지고지순하게 한 회사에 근속하는 사람들이라니. 이쯤 되면 채용 비결이 궁금하기도.
이 회사의 대표가 퇴직하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 2월 28일. 누군가에겐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는 설레고도 두려운 날이고, 누군가에겐 인사발령으로 익숙했던 업무에 작별을 고해야 하는 날이다. 우리 회사의 대표님은 총 42년의 직장생활을 하셨다. 42년 동안 단 두 군데의 회사만을 다녔으니 요즘 말로 프로이직러는 아닌 셈이다.
근속 42년.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고작 8년 다닌 나는 늘 퇴사를 생각해 본다. n잡러가 되어 파이어족을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은 어느 직장인이다. 세상이 불안해서인지 나 자신이 불안해서인지 내가 선택했음에도 한 가지 회사와 한 가지 일로 충분치가 않다. 늘 더 좋아 보이는 회사, 더 나아 보이는 직업을 향하는 길로 갈아타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것만 같다. 소확행도, 취미의 중요성도, 행복은 빈도가 중요하다는 것도 어쩌면 지금 내 자리에 불신이 들어서가 아닐까. 우린 왜 내가 이 트랙에 놓여 있는지는 모르는 채 한시라도 빨리 결승선을 끊고 싶어 앞만 보며 달리고 있다. 숨이 차지만 빨리 이 달리기를 끝내고 싶다. 그래서인지 종종 자신이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가는, 지루해 보이지만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 결승선에 다다르는 마라토너 같은 직장인의 위대함은 쉽게 잊히곤 한다.
며칠 전 대표님과 회의에 갔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지막이 한 해의 공백도 없이 42년을 일했다며 팀장님과 담담히 소회를 나누시는 대화를 들었다. 후련해 보이기도 하고 결연한 것도 같고 아주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나는 듯도 한 그 형용할 수 없는 목소리는 꽤나 오래 귓가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