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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bird Mar 02. 2023

퇴사 권하는 사회에 정년 퇴직하기

  

정년퇴직이란 말이 생소해졌다. 명예퇴직이라면 모를까 정년퇴직이라니. 뉴스에선 한창 일 할 나이인 40대도 명예퇴직 대상자로 신청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뉴스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설령 회사가 나를 명예퇴직 대상자로 취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회사가 내가 정년이 될 때까지 있어줄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의심이 든다.


  급변하는 요즘 시대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다니는 회사는 본인이 원하면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 곳이다. 근속 25년 20년인 직원의 비율이 이미 상당하고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경제 불황과 명예퇴직, 파이어족, n잡러의 시대에 지고지순하게 한 회사에 근속하는 사람들이라니. 이쯤 되면 채용 비결이 궁금하기도.



 회사의 대표가 퇴직하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    2월 28일. 누군가에겐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는 설레고도 두려운 날이고, 누군가에겐 인사발령으로 익숙했던 업무에 작별을 고해야 하는 날이다. 우리 회사의 대표님은 총 42년의 직장생활을 하셨다. 42년 동안 단 두 군데의 회사만을 다녔으니 요즘 말로 프로이직러는 아닌 셈이다.


근속 42년.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고작 8년 다닌 나는 늘 퇴사를 생각해 본다. n잡러가 되어 파이어족을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은 어느 직장인이다. 세상이 불안해서인지 나 자신이 불안해서인지 내가 선택했음에도 한 가지 회사와 한 가지 일로 충분치가 않다. 늘 더 좋아 보이는 회사, 더 나아 보이는 직업을 향하는 길로 갈아타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것만 같다. 소확행도, 취미의 중요성도, 행복은 빈도가 중요하다는 것도 어쩌면 지금 내 자리에 불신이 들어서가 아닐까. 우린 왜 내가 이 트랙에 놓여 있는지는 모르는 채 한시라도 빨리 결승선을 끊고 싶어 앞만 보며 달리고 있다. 숨이 차지만 빨리 이 달리기를 끝내고 싶다. 그래서인지 종종 자신이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가는, 지루해 보이지만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 결승선에 다다르는 마라토너 같은 직장인의 위대함은 쉽게 잊히곤 한다.



며칠 전 대표님과 회의에 갔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지막이 한 해의 공백도 없이 42년을 일했다며 팀장님과 담담히 소회를 나누시는 대화를 들었다. 후련해 보이기도 하고 결연한 것도 같고 아주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나는 듯도 한 그 형용할 수 없는 목소리는 꽤나 오래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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