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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에서 길을 잃고 히치하이킹을 해보았는가

여행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다.

by 여지행

대학생 시절 40일간의 유럽 여행 중 겪었던 일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된 여행은 어느덧 5일 차를 맞았고, 나는 뮌헨에 도착했다. 뮌헨에서 가까운 소도시들을 둘러보던 중,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있는 퓌센으로 향했다. 성을 구경한 후 돌아오는 길, 우연히 버스 창밖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초원 풍경에 이끌렸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지만, 충동적으로 그 방향으로 버스를 타고 수십 분을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곳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황홀한 풍경을 품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연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해가 저물기 전에는 돌아가야 했다. 서둘러 버스를 내렸던 곳으로 갔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이미 버스 운행이 끝났다고 했다. 이곳은 오후 5시가 되면 대중교통이 끊긴다는 것이다. 더 이상 이곳에서 나가는 방법이 없었다.


여행을 떠난 지 5일 만에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

이곳은 작은 시골 마을이라 숙소도 마땅치 않았고, 설령 있다 해도 나는 이미 뮌헨에 숙소를 잡아둔 상태였다. 게다가 여행 자금도 넉넉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여행 책자를 들고 다니며 길을 찾던 때였다. 지금 어디쯤 있는지, 얼마나 걸어야 버스정류장이나 기차역이 나오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나는 막막한 마음으로 가방을 둘러메고 걸음을 내디뎠다.

‘이러다 오늘 밤 길에서 자야 하는 거 아닌가.’

불안감이 엄습했고, 버스에서 내릴 때 나가는 버스 시간을 미리 확인하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나는 가방에서 메모장을 꺼내 한 장을 뜯고, 볼펜으로 기차역 이름을 또렷이 적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차를 향해 종이를 들어 보이며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내게도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지나가는 차도,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걸으며 길 위에서 도움을 기다렸다.


세상이 무심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마침내 한 젊은 대학생이 차를 멈추고 나를 태워주었다. 내가 적어둔 기차역은 이 지역에서 거의 나가는 일이 없는 곳이라며, 기차역 인근에 내려주었다. 그렇게 나는 기차를 타고, 자정이 넘은 시각이 되어서야 겨우 숙소로 돌아왔다.


첫 해외여행에서, 낯선 땅에서 길을 잃고, 히치하이킹으로 돌아오는 경험.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차를 태워준 그 대학생.

요즘 같았으면 SNS나 연락처라도 주고받아 감사 인사를 전했겠지만, 그때는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이메일 주소조차 묻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수많은 기억이 남아 있지만, 그날의 경험만큼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또렷하다.

아무도 없는 시골, 어디인지도 모르는 들판 한가운데에서, 밥 한 끼 먹지 못한 채 새벽의 추위를 견디며 돌아온 그날.


그 이후로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나는 그날의 경험을 떠올리곤 한다.

"방법이 없다는 건, 핑계에 불과할 수 있다."


길이 없다고 좌절하기 전에, 내가 가야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길은 열린다는 것을.

비록 내가 계획한 방법이 아닐지라도, 멀고 돌아가는 길이라 할지라도, 결국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음을 나는 그날 배웠다.


우리는 늘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길만을 찾으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길은 하나가 아니다. 돌아가는 길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때로는 그 길이 예상보다 더 값진 경험을 선물해 주기도 한다.


40여 일간의 여행 동안 나는 무수한 실수와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경험이었다.


무엇을 보려고만 하지 말고, 무엇이든 온전히 느껴라.

남들이 정해둔 여행지를 좇기보다, 진짜 ‘나’를 찾아 떠나라.


그것이 여행의 진정한 의미다.

여행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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