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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여유의 태도

예상치 못한 젖음이 완벽을 찾는 나에게 조언하다

by 여지행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진다.

물살을 가르며 뛰어드는 아이들의 얼굴은 걱정이 없다.

순간을 만끽하는 그 자유로움이 참 부럽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 한켠이 풀리는 기분이다.


나 역시 물에서 노는 걸 좋아하지만,

의외로 ‘예기치 못한 젖음’엔 유난히 민감해진다.

특히 신발까지 젖어버리는 상황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옷은 갈아입으면 되지만,

신발은 말리고, 세탁하고, 관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번거로움을 미리 떠올리며 즐거움을 잠식당한다.


한참 전, 스무 살 겨울.

친구들과 충동적으로 떠난 새벽 여행이 있었다.

동해의 일출을 보겠다며, 한 명씩 차에 태워 떠난 젊음의 모험.

그 바닷가에서 파도에 신발이 홀딱 젖고,

우리는 낄낄거리며 모래밭을 뛰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 한 켠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자꾸 집중했다.

“이 신발, 오늘 하루 어떻게 신고 다니지?”


그 순간도 웃고 있었지만,

나는 ‘그 이후’에 일어날 일을 상상하며 현재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그 기억은 지금의 나에게 말해준다.

젖는 것 자체보다,

그 젖음으로 생겨나는 ‘계획에서 벗어난 일들’을 감당하지 못해 괴로워했던 거라고.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

통제되지 않는 감정,

예고 없이 다가오는 변화 앞에서

나는 자꾸만 ‘불편함을 어떻게 줄일까’를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 삶은 계속 지금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가끔은 젖어야만 얻는 것이 있다.

물기를 피하려 애쓰기보다,

그 안에 발 담그는 용기가 우리를 변화시킨다.


신발이 젖는다는 건,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흔적이고,

삶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는 증표다.


어쩌면 우리는

삶을 완벽하게 관리하는 데 너무 익숙해진 건 아닐까.

예정된 범주에서 벗어나는 모든 순간을

‘문제’로 인식하고 마는 태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젖는다고 모든 게 망가지지는 않아.

그건 네가 순간을 살고 있다는 징표야.

조금 춥고 불편하더라도, 그건 지나갈 일이야.

대신 그 순간은 너를 오랫동안 웃게 해줄 거야.”


불확실성과 예상 밖의 변수들이 가득한 삶.

우리는 매일 그 안을 걷는다.

젖지 않으려 애쓰는 대신,

그 젖음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보자.

그게 진짜 ‘지금을 사는 태도’일지 모르니까.


결국 삶이란,

마르는 것보다 먼저 젖어야 하는 것이고,

정리보다 먼저 웃음이 터지는 것이며,

불편함 너머에서야 비로소 느껴지는 따뜻함이다.


오늘 하루, 조금은 젖어도 괜찮다.

그 젖음이 우리를 더 자유롭게, 더 사람답게 만들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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