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슬픔과 아쉬움 마저, 해주고 싶었던 마음. 하지만 돌아오는 후회다
불편함을 대신 해결해 주던 부모, 그것이 진짜 최선일까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날이었다.
아이와 함께 어린이 체험 센터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각자 커스텀 티셔츠를 만들던 날이었다.
아이가 자기이름의 이니셜과 좋아하는 색상으로 티셔츠에 넣을 문양과 글씨를 직접 골라 개성을 담았다.
아이는 선택하는 매 순간마다 얼굴이 환해졌다. 하나하나 글자를 고민하며, 그 작은 결정 하나에도 기쁨을 느끼며 흥미로워 했다.
원하는 이미지에 글자와 모양들을 세팅하고 열을 가해서 부착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인쇄 과정에서 작은 실수가 있었다. 글자가 살짝 울어버린 것이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집에 돌아와 티셔츠를 펼쳐 본 아이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맺혔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만든 건데…”
그 말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속상할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오직 아이의 상심을 달래는 방법만을 생각했다. 직접 만든 거라, 얼마나 속상할지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만약 내가 대신 다시 만들어주면, 표정이 금세 밝아질 텐데…’
하지만 글자 크기, 모양 고르기 등 다시 하나씩 커스텀으로 선택해야 하는 작업은 나 혼자 할 수 없고, 그건 그 아이가 직접 만든 게 아닌게 된다. 오늘 만든 것과 완전히 똑같을 수도 없다. 의미까지 퇴색해 버린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다시 방문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조금 울퉁불퉁한 글자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실 어떻게라도 해결을 해주고 싶어서 마음이 불편했지만, 아내는 얘기했다.
"모든 걸 다 해결해 줄 수는 없어." 그 순간 나도 '아차' 싶었다.
'그래. 이런 상황도 겪어야지.', 부모가 항상 해결해 준다는 게 정말 아이에게 좋은 게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깨닫는다. 만약 그때 내가 아이의 아쉬움을 대신 해결해 주었다면, 아이는 스스로 문제를 마주하고 이겨내는 법을 그만큼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늘 아이의 불편한 감정을 대신 덜어주려 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콘 위에 얹은 아이스크림이 통으로 떨어지면 바로 다시 사주기 바빠고, 만들기 장난감이 부서지면 속상하기 전에 다른 거로 대체해주려 했다. 게임에서 지기만 하면 속상할까봐 가끔은 티 안나게 져주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것은 아이의 성장을 기다려주는 사랑은 아니었다.
진짜 부모의 역할은 상처를 막아주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견디고 성장하는 방법을 함께 배우는 것이었다.
이제와서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때를 돌아볼 수 있는 지금, 그 사실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다행이라 생각한다.
결국 아이는 이니셜 하나가 울퉁불퉁한 거를 받아들이고 일단 입기 시작했다. 입을 때마다 짜증을 냈지만 몇 번이 지나자 조용해졌다. 아이도 하루 이틀이 지나고 막상 입고 다니면 그렇게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고 적응할 수 있었다.
처음 불량 부분을 발견했을 때, 그때 나는 단지 아이의 불편한 마음을 해결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으면 아이는 이런 상황을 전혀 적응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한번의 경험 만으로 다음의 불편함을 한번에 적응하고 배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성장하는 경험을 배운 것이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진짜로 아이를 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아마 나는 여전히 급하게 손을 내밀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오늘을 떠올리려 한다.
조금은 불편하고, 조금은 아쉬운 감정을 그대로 겪으며 스스로 성장하는 너를 믿어주는 것.
그것이 이제 내가 해야 할, 부모로서의 진짜 사랑임을.
대신 아픔을 치유해주고, 불편함을 빨리 해결해주는 것, 그것이 아이의 지금을 아끼는 거 같지만 지나보면 그것은 아이의 미래를 희생하는 것이다. 스스로 이겨내길 기다리는 것 그 기다림을 인내할 수 있어야 나도 정말 성숙한 부모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