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숨겨진 진심. 사춘기 아이에게도 늘 감사와 고민이 있었다.
“중학생 되고 나서 친구들이랑 노느라
엄마랑 이야기하고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적어진 것 같아.
그래서 아쉬워.”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아이는 우리와 보낸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었구나,
우리 마음이 닿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건
어쩌면 어른들의 착각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가슴 깊이 밀려왔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내가 엄마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였으면 좋겠어.”
그 한 줄에
나는 아내와 눈시울이 동시에 붉어졌다.
늘 자기감정만 내세우는 것 같았던 아이 마음속에
이렇게 따뜻하고 맑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 둘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중학생 사춘기 딸이 아내에게 남긴 편지를 아내가 나에게 보여줬다.
요즘 들어 아이는 눈에 띄게 예민해져 있었다.
하고 싶은 것도, 잘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예민해지고 감당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다 보니 그 부담과 불안이 집에서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집에서는 작은 일에도 금세 짜증을 내고, 분노가 툭툭 튀어나왔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집에 들어서면 먼저 아이의 표정을 살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춘기라면 누구나 겪는 감정의 파도라는 걸 알면서도, 막상 그 파도 앞에 서 있는 부모가 되고 보니
마음이 시리고 허전한 순간이 더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늘 걱정이 많았다.
‘혹시 밖에서도 저럴까?’
‘이 시기에 흔히 겪는 일일까, 아니면 잘못된 신호일까?’
그리고 가장 큰 고민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아이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주면서 혹은 그 사랑을 주는 방식 때문에 감정적 결핍과 작은 고난을 제대로 느껴볼 기회를 빼앗아온 건 아닐까.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미리 해결해 준 일들, 대신 화를 풀어준 순간들, 달래고 보듬으며 지나간 많은 장면들. 그것이 결국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다루고 수습하는 법을 배울 기회를 막은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은 우리 부부를 계속 흔들었다.
그런 고민들이 길게 이어지던 어느 날.
아내의 생일 아침, 아이가 작은 화분 하나와 편지를 두고 갔다.
평소 너무나 퉁명스럽고 살갑지 않았던 아이기에 더 감동은 크게 다가왔다.
“중학생 되고 나서 친구들이랑 노느라
엄마랑 이야기하고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적어진 것 같아.
그래서 아쉬워.”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아이는 우리와 보낸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었구나,
우리 마음이 닿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건 어쩌면 어른들의 착각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가슴 깊이 밀려왔다.
아이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긴다.
"내가 엄마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였으면 좋겠어." 그 말에 나도 아내와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렇게 퉁명스럽고 자기감정만을 내세우는 아이의 마음속에는 그렇게 엄마에게 큰 의미 있는 존재로서 함께 하고 싶은 의지가 담겨있었다는 말에 결국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꿈이 많아서 힘들어.’ 아이가 건넨 또 다른 말.
어린 마음에 벌써 이런 고민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만큼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해 보려는 진지한 성장의 모습이기도 했다. 어린 나에서 벌써부터 이런 고민을 하며 안타깝고 안쓰럽지만 또 그 시기를 정말 열심히 부딪혀보며 성장하는 이 아이의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는 너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도 성장하기 위해 자신의 꿈과 노력을 쌓아가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불안과 좌절, 설렘과 성취, 그 모든 감정은 제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는 삶의 첫 여정이었다.
결국 성장은 아이만의 몫이 아니었다.
아이도 어른이 되어가는 길을 걸으며, 우리 역시 부모로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울고 웃고 불안해하며 서로의 마음을 배우는 이 시간들. 그 시간이 쌓여,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아이의 성장은 곧 우리의 성장이고,
이 조용한 변화들이 모여 가족이라는 이름의 가장 깊고 따뜻한 행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