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딸들은 자라서 엄마가 될까
#너의유전자가땡겨
#이미나온애들부터잘챙깁시다
대뜸 결혼은 안 해도 되니 애만 하나 낳잖다. 하나 낳으면 안 되겠냔다. 자기가 키울 테니 너는 돈만 벌어오란다. 며칠 전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남자 친구이나 애인?(그런 게 있을 리가) 번식 욕구에 시달리는, 정자 제공 의지가 있는 남사친?(아직 만나보질 못했다) 다 땡. 모두 아니다. 그건 다름 아닌 엄마다. 오빠가 나이 마흔에 결혼해 낳은 손녀 하나 돌보기도 체력이 달려 오늘내일 안에 까무러칠 것 같다고 매일 돌림노래를 부르는 칠순의 노모가 하는 소리였다. 그것도, 타지에서 홀로 지내는 마흔 넘은 딸에게.
아니 남자도 없는데 무슨 임신이며, 이 나이에 초산이면, 애 낳다 죽는다고 펄쩍 뛰며 대꾸를 하다가, 별안간 그런 생각이 스친다. 근데, 결혼 안 하고 애만 낳아도 돼? 엄마 생각보다 선진적이네? 엄마가 그런 소릴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나저나 아마, 내 자식을 갖고 싶다거나, 저 남자의 '아'를 낳아주고 싶단 욕망이 내게 든다면 과연 나는 결혼 없이, 아이의 아빠 없이 아이를 낳는 결정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그런 용기가 있을까. 지금으로썬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버겁다고 자조하는 나는, 그러한 욕망이 1도 없지만, 그렇기 때문인지 그걸 감내할 용기도 지금으로썬 없는 것 같다.
그나저나 이 노인네가 갑자기 왜 뒤늦게, 자손에 대해 애착, 미련을 시전하는 것일까. 엄마와의 대화를 다시 시간 역순으로 복기해보았다. 우린 그날 오전에, 카톡으로 내 생리 이야기를 했다. 요가를 시작한 이후로, 나는 수십 년 고무줄처럼 줄었다 늘었다 하던 생리 주기가 거의 정상에 가깝다시피 돌아왔고, 나를 괴롭히던 생리불순이 사라졌다. 생리 전 감정 기복이나 유방통도 줄었다. 그로 인해, 몸과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엄마는 그날 내 돌아온 생리 이야기를 듣고서는 굉장히 놀라 했다. 그러고선, "임신이 쉬운 체질이 됐네?"가 저 애를 낳자는 발언 전의 마지막 말였다.
엄마는, 30년 가까이 생리 때문에 고생하는 딸을 보며, 우리 딸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라고 혼자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그건 엄마가 잘못 생각한 것이다. 20대에 방송국 작가 생활은 내 몸의 리듬을 크게 깨뜨렸고 생리불순에 박차를 가할 뿐이었다. 30대 초반 날뛰는 호르몬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몸과 마음의 기복이 버거웠던 나는, 서울에서 불임 난임 치료로 유명한 병원에 가 검사를 받았다. 검사 후, 의사로부터 최종적으로 확인한 것은 내가 가진 증상이 정상이라 할 순 없지만, 임신을 하는 데 있어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고 방법이 있으니 너무 걱정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별다른 개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임신할 계획이 본래 없었고, 당시 병원을 찾은 목적도 임신은 아니었다. 그저, 날뛰는 생리 주기와 호르몬에 내 몸과 마음이 도저히 박자를 맞추기 힘들었고, 그로 인해 직장생활도 버거울 정도여서 원인이 뭔지 진단을 받아보자 했을 뿐이다. 정상적으로 살고 싶었다. 생리나 호르몬에 지배받지 않고, 그냥 규칙적인 주기를 그리며, 정상적인 궤도로 살고 싶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 한약이나 운동 등으로 문제를 개선하고자 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규칙한 생리주기로 인해, 만나는 사람이 있을 때는 피임을 하면서도 임신에 대한 공포가 수시로 찾아왔다. 왜 생리가 안 오지. 나 임신한 건 아닐까. 만약 임신이면 이 남자랑 결혼해야 하나. 혼자 병원에 가야 하나. 그런 복잡한 심사로 전전긍긍하다 생리가 오면 겨우 한숨 돌리는 식이었다.
"너도 자식 하난 낳아서 키워봐야 할 거 아냐? 니 나이보다 더 먹었어도 생기면 다 낳을 수 있어. 잘만 키웠단다" 하는 엄마의 마지막 공격에, 생각도 말라고 난 아픈 건 못 참는다고 틀어막고 카톡을 닫았다. 너도 자식 하난 낳아서 키워봐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 나한테는 이렇게 들렸다.
"남들 다 하는 거 너도 해야 할 거 아냐? 남들 집 사는데, 결혼하는데, 애 낳는데, 자동차 사는데, 재테크하는데, 돈 버는데, 잘 나가는데, 다 그러고 사는데 왜 넌 안 하고 뭐 하는 거니."
나한테는 씨알도 안 먹히는 말이다. 왜 씨알도 안 먹힐까. 왜냐하면 나는 남들 다 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니까. 남들이 하니까 나도 당연히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은 평생 내 기억엔 하나도 없다. 이상하게 다수가 하는 일보다 상대적으로 다수가 못해본 일에 관심이 더 많은 편이다. 물론, 다수가 원하고 걷는 길이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는 방법이라는 것, 경쟁은 심하지만 결과적으로 안정적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내 욕망을 끼워 맞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람이 자기 자식을 갖고 싶다는 마음을, 실상 잘 이해하지 못한다. 주변에서 보면 어떤 이들은 이유를 알 수 없도록 자식을 굉장히 강렬하게 원하는 경우가 있다. 오로지 아이를 갖고 싶어서 배우자를 찾아 결혼한다거나, 배우자가 없어도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경우가 그렇다. 대부분 여성이 주인공이다. 그러고 보면 여성에게 자식이란, 꼭 ‘관계의 충족’에서 나오는 산출물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은 관계보다는 한 개인의 욕망 혹 본능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고도 느꼈다.
살면서 지금까지, 딱 한 번 저 사람의 아이를 낳고 싶단 충동에 휩싸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충동의 대상이, 이성적인 감정이 없는, 깊은 관계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동안 어리둥절한 맘으로 대체 이게 뭘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친밀한 관계에 있었던 남자에게서도 한번 느껴본 적 없는 충동을, 낯선 이에게서 불같이 느끼고 나서 알았다. 이 마음은, 뇌나 마음(감정)을 통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 그것들의 지배를 받지 않고, 본능만으로 작동하는 독립적인 욕망이라는 것.
나는 그 사람의 유전자가 탐났던 것이다. 우수한 두뇌, 월등한 신체 조건, 그리고 아이를 안고 있는 싱그러운 미소를 나는 재생산하고 싶다는 본능에 사로잡힌 것이다. 우월한 유전자의 재생산, 그것이 내게 아이를 낳고 싶다는 욕망의 정체였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 말을, 나는 서른을 훌쩍 넘은, 적지 않은 수의 여자들이 기꺼이 동의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