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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야 Jun 03. 2023

내 남편의 여자(1)

나는 당신 딸이 아닙니다

 



 제목이 '내 남편의 여자'이다 보니 외도나 상간녀와의 싸움이 상상되겠지만 아쉽게도(?) 사이다 결말은 존재하지 못할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싸움이 엄청났을 때 나는 김밥의 시금치는 물론 '시'자로 시작하는 모든 것이 싫어 피아노 건반에도 '도레미파솔라 도'만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이번 글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도덕이나 윤리와 직결되는 부분의 것이다. 이런 것들로 받은 상처는 대체로 매우 자극적이고 충격적이기 때문에 떠오르는 횟수도, 내뱉어야 할 횟수도 많은 것 같다. 마음에 깊게 맺힌 것은 반복적으로 풀어내고 또 풀어내서 더 이상 나올 말이 없을 때까지 풀어내야 하는 것 같다.


 이 글은 K-며느리의 고충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네** 판에 올라올법한 자극적인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어도, 누군가에겐 아주 개인적인 경험과 아픔을 투사하게 되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또한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형성되는 기본적 애착관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스스로 독립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나를 위하려 그 나름의 최선은 다했었지만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는 등에 업은 엄마를 끝내 내려놓지 못했다. 그리고 이 이혼으로, 그 어머니는 원하던 대로 당신 아들을 다시 품게 될 것이다.  

 


딸 같은 며느리는 없다

 

 이 집의 공식 며느리가 되기 한 달 전, 우린 이미 신혼집에 살고 있었고 연휴에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에서 돌아온 며칠 후, 그의 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하셨고 심야영화를 보던 중이라 그가 대신 받아 나중에 전화드리겠다며 끊었다. 자정이 갓 넘은 시각 다시 연결된 통화에서 그분은 시부모가 전화를 했으면 튀어나와서 전화를 받았어야 했다며 소리를 질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편이었던 그는 엄마에게 대들었고, 그 후 내 폰에 들어오는 자신의 부모 연락을 계속 수신거부 했다. 다음날 이 분은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자신을 무시하여 아들이 대신 받았고, 너무 귀해 물도 안 먹이고 우유만 먹여 키운 아들이 나를 감싸느라 대들었다'며 시댁 도리에 대한 것을 '따님'에게 가르쳤어야 한다며 가정교육을 들먹였다. 당연히 이 내용을 들은 나는 분개했고, 그는 친정 엄마에게 대신 사과드리고 나를 달랬다.


 엄마가 이 통화에서 화를 내지 못한 것은 1. 우선 그녀의 말이 너무 많아 끊지를 못했고, 2. 저 이야기 이후에는 자신이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힘들었던 하소연이 눈물 콧물과 함께 쏟아져내려 동정심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진심으로 말하는데, 나는 이때 헤어졌었어야 했고 우리 엄마는 그냥 전화를 끊었어야 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결혼식 전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사랑이라는 게 그렇게 안 된다. 그래서 비극은 항상 나중에 벌어지는 것이다.

 

 이 싸움의 내용을 상세하게 쓴 것은, 이 싸움의 구조가 결혼 생활 내내 반복적으로 그 모양새를 구체화하여 드러냈기 때문이다. [내게 원하는 며느리 도리가 있음 - 그런데 마음에 안 듦 - 나를 다그침 - 아들이 대듬 - 내 탓을 하거나 친정을 욕함 - 나도 대듬 - 파국]의 형태라고 보면 된다. 이 공식에서 '나도 대듬'을 빼 버린다 한들 저 파국이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 집 딸이 아니다. 그의 가족체계와 이데올로기를 마주하며 나는 많은 혼란을 겪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들의 이중언어였다. 시부모는 내게 '빈말이라도, 내가 해달라는 게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건 아니지만'으로 말을 시작하여 결과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며느리의 모습을 말했다. 그리고 그 표본은 어머님의 삶이었다. 엄청난 효자였던 아버님의 뜻을 따라 시부모를 봉양하고 시댁에 헌신했고, 부부싸움이 매우 많았어도 남편이 무서워 감히 화를 내고 맞서지 않았으며, 자신은 두 아이를 너무 힘들어 울면서 키웠지만 이 희생으로 아이들이 잘 성장했다는 것.

 듣다 보면 고된 삶이었다. 나는 같은 여자로서 그녀가 힘들었다는 것은 이해한다. 또한 그들 기준의 성공적 삶 - 학업, 직업, 명예 -와 가족애에 대한 것들도 존중한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내가 '시집을 왔으면 그 가족을 따라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과 강요였다. 


 나는 결혼을 한 것이지 그들의 딸이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전혀 다른 가정에서 자랐고 내 부모의 교육방침이 따로 있다. 물론 우리 집도 따지고 보면 당연히 문제가 있고, 내가 성장과정에 겪은 상처도 물론 있다. 나도 내 부모님을 사랑하면서도 닮고 싶지 않은 부분이나 이해하지 못해 부딪히는 성격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그 누구나 자신이 자란 환경이 아닌 다른 이의 가족구조나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는 것이다. 이래서 결혼이 어려운 것이라고들 하나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러한 차이점은 서로 간의 분명한 선을 지키며 서서히 적응하도록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물림되는 원가족의 상처와 애착구조 


 가장 가까운 가족 사이의 관계 패턴과 소통 구조에 원인을 두고 심리적 문제를 파악하는 학자들이 많다. 최광현 박사의 <가족의 두 얼굴(개정판), 2021>이 많이 알려진 대표적인 연구 서적 중 하나 일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각자 자신이 나고 자란 원가족의 상처나 애착구조가 대물림된다는데 초점을 두고, 이를 직면함으로써 현재의 심리 문제를 조명할 수 있다고 한다. 원가족에서의 갈등과 아픔이 세대를 이어 증폭되고 전수된다는 이론이다. 가장 사랑하고 안전한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각자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 또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이 최고조에 이르러 그가 또다시 시댁으로 가출했을 때, 부부상담을 하며 이 책을 각자 읽었다. 그는 그 당시 자신의 가족구조를 돌아보고 부모의 강압적인 부분과 그에 따른 심각한 간섭을 인정했다. 나 역시 몸이 아팠던 엄마에 대한 책임감으로 스스로 해결사가 되어버린 내 내면아이를 애도했다. 서로에게 힘들었던 부분도 이해하며 우리는 더 잘 살아갈 줄 알았으나 결국 우리는 끝내 맞춰갈 수가 없었다.


 결혼 전, 그의 친구는 내게 그의 어머니를 조심하라고 했다. 그도, 그 동생도 엄마를 염려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가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결혼 초기부터 위와 같은 구조의 싸움이 수도 없이 반복했다.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고, 내 일거수일투족 하나까지 다 지적받는 기분이었다. 나중에는 말투와 생각까지 강요당했고, 그런 싸움의 반복 속에서 그는 내가 자신의 부모 때문에 헤어지자고 할까 봐 걱정된다고도 했다.

 초반의 그는 부모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다. 말과 행동이 너무 센 어머니와, 아들을 아직 덜 큰 영원한 아이로 보는 아버지에게 맞서 싸웠으나 나는 계속 고통받았다. 그의 노력이 더해질수록 그의 부모는 말 잘 듣던 아들이 나와 살면서 자신들을 배척한다고 나를 탓했다. 


 나는 그를 사랑했으나 그의 가족들이 버거웠다.  내게 삿대질을 하기도 했고, 아무런 필터 없이 자신들의 생각을 내게 다 쏟아내었고, 그에게 장문의 메시지로 나와 내 가족을 욕한 적도 있으며, 그들에게 화합되지 못하는 내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까지 했다. 남에게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사람의 심리상태는 어떠한 것인지 이제야 생각해 본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남을 이렇게 판단하고 막 말을 퍼부을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골은 더 깊어졌고 나는 마음이 완전히 닫혀버렸던 것 같다. 몇 번의 큰 싸움을 겪으며 그는 가족과 단절하기도 했다. 나는 그 당시 천륜은 끊을 수 없는 것이니 나중에 나를 원망할 것이라며 말렸지만, 그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부모가 깨닫지 못한다고 한동안 연락을 끊었다.

 결국 내 우려대로, 그는 나중에 자신이 부모와 그렇게 끊기까지 했었음에도 나만 변하지 않는다고 탓했다. 끝내는 자기 엄마는 잘못이 없고, 원래 그런 사람인데 수용하지 못하고 반항하는 내게 문제가 있다고 했다. 


 가장 큰 문제는 그가 그 부모의 언어를 그대로 차용하여 내게 비수를 꽂는 말을 지속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완전무결한 가치와 가족애를 강조하며 그것에 따르지 못하는 나를 비난했고, 가끔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반복적으로 이야기한 나에 대한 비난을 그가 내게 가할 때 나는 그와 그 가족 여럿을 동시에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느낀 그와 부모의 관계는 의존적이며 양가적이다. 그의 입으로 말했던 것처럼 성장과정에서의 학업에 대한 압박, 간섭, 성공하는 삶에 대한 기대들 때문에 그는 부모를 사랑하지만 벗어나고 싶어 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느낌이지만 그는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에 늘 화가 나있는 것 같았고, 나 혹은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도 그는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거세게 폭발했다. 때로 나는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이 부분은 이해한다. 나도 누군가의 의도와 달리 오인하여 스스로 상처를 불러일으키는 적이 많기 때문이다.



희생은 사랑의 필수조건이 아닙니다


 그의 어머니는 내게 아들을 뺏긴 것 같다고 자주 말했다. 나는 이러이러하게 키웠는데, 걔는 이런 아이인데, 나는 이렇게 해주었는데 등을 자주 말했다. 내가 쌓인 감정이 없었다면 그냥 그렇군요, 했을 이야기지만 감정이 늘 안 좋은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저런 말을 듣다 보니 그럼 평생 데리고 살지 왜 나한테 본인의 역할을 자꾸 강요하는지 화가 났다.

 문제는 이분이 자꾸 같은 소리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내게 여러 번 말한 것 중 하나가, 우리가 맞벌이임에도 그가 집안일을 하는 걸 보며 마음이 찢어지고 그가 나한테 잘하려 노력하는 걸 보면 밑지고 들어가는 것 같아 속이 뒤집힌다는 말이었는데, 이때마다 입을 꿰매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굳이 왜 내게 직접적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게 딸 같은 며느리를 강요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내게 그의 또 다른 엄마, 또 다른 당신이 되길 강요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그녀처럼 했다 하더라도 절대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 많은 타박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니즈를 알고 채워주길' 바라는 내용들이었다. 이중언어를 쓴다고 굳이 콕 집어 말한 것이 이러한 이유이다.  

 나는 결국 그들이 강조하는 '희생'으로 키워낸 '잘 생기고 똑똑하고 능력 있고 너무 착한' 아들을 그녀만큼의 희생으로 대하지 못했고, 그들이 강조하는 끈끈한 가족애에서 동떨어진 가족 내 왕따였으며, 고전적인 시집살이는 아니었지만 내 나름 정서적인 시댁살이를 엄청나게 했다. 이것은 자주 만나고 안 만나고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이것은 내 문제인데, 나는 정말 그들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할 때 그 미움을 자주 그에게 투사했다. 특히 그의 어머니가 한 말이나 단어를 내게 말하며 비난할 때 가장 돌아버릴 것 같았다.

 나는 분명히 말하건데, 희생이 사랑의 필수조건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그들은 내게 이기적이라 말했다. 어쩌면 그들 말이 맞다. 나는 이기적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려고 결혼한 것이다. 내 기준의 희생과 그들의 희생은 다르다. 모든 선택의 기준은 본인이다. 그런데 내가 행복하지 않을, 그 가족을 위한 다른 모습이 되어 살 수는 없다. 프로이트도 말했듯이 사실 사랑의 본질은 자기애가 아닌가.  


 비교도 문제였다. 그의 어머니는 내게 시댁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인터넷에 찾아보라고 했다. 얼마나 많은 며느리들이 시부모를 봉양하고 선물을 하고, 예쁜 짓을 하는지. 나는 네** 판이나 보시라고 답하고 싶었다. 당신같이 막말하는 시어머니가 내 시대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평가를 받는지 직접 비교해 보시라고 캡처라도 해서 들이밀고 싶었다. 

 내가 내 주변인들에게 이렇게 속사정을 다 이야기하지 않고서라도, 아주 짤막한 일화만 이야기해도 그들은 다 놀랐다. 그걸 본인만 몰랐다. '비교'라는 것이 내게 꽤나 충격적이었던 것은, 사실 내 부모님은 나를 남과 비교한 적이 드물기 때문이다. 가끔 엄마가 시니컬한 지금의 나에 대해 통탄하며 과거의 나와 비교하긴 했어도, 물질적인 것이나 사회적 입지, 남들의 시선에 대해서는 비교급으로 나를 깔아뭉갠 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사실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내 주변에는 그녀같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시어머니가 없다고 늘 생각했으니 말이다.

  


너를 위해서? Nope. 나를 위해서!


 이토록 가족 간의 우애와 희생을 강요했음에도 정작 당신은 그런 삶은 살지 않는 것이 모순적으로 다가왔다. 아직까지 경제활동을 하는 그녀의 직업을 온 가족이 모른다. 진짜다. 심지어 나도 여러 번 물었으나 그런 걸 왜 물어보냐며 그냥 일한다고만 하셨다. 거의 20년간 그녀가 어디서 어떤 일을 하는지 가족들이 모른다는 것이 나로서는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

 시아버지는 일 때문에 장기적으로 지방 파견 등이 잦았다. 그와 동생도 학업 등을 이유로 오래 떨어져 살았다. 뿔뿔이 흩어져 산 시간이 꽤 되는 이 가족은 자신들의 끈끈한 가족애를 강조한다. 나는 이것은 거리감이 만들어 낸 그들의 이상향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들은 서로가 걱정할까 봐 진짜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 간의 사랑은 진실이겠으나 서로를 위한 배려와 희생을 빌미로 솔직하지 않은 모습이 자주 보였고, 서로에 대해 잣대를 들이댈 때도 '너를 위해서'라는 사랑의 탈을 쓴 강요를 가했다고 생각했다. 때로 그 주제가 내가 될 때 나는 내 본연의 존재가 완전히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이 또한 가족 내에 눈치채지 못하게 벌어지는 가스라이팅의 일종이다.


 이 모든 사건들의 핵심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내가, 그가, 그의 부모가, 나의 부모가 이어내려 온 가족의 상처들이 그 속에 잔존한다. 내가 아는 내 부모, 그의 부모의 성장과정 속 상처받은 아이들이 아이를 낳아 나와 그가 되었다. 나는 내 가족의 모습을, 그는 그의 가족의 모습을 지니고 만났다. 결혼생활에서 나 혹은 그가 대변하는 서로의 가족이 부딪힌 부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우리의 가장 큰 잘못은 그 원가족을 서로를 상처주기 위한 무기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등뒤에서 그에게 끝없이 내 욕을 하고 그에게 자신의 의견을 주입하는 어머니가 너무 미웠다. 그녀가 그럴수록 나는 그 사랑하는 아들에게 비난을 가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그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와 전혀 관계없는 나와 내 가족의 상처가 예민하게 고개를 들어 의도를 오인하고 자격지심을 갖게 했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이란 내면의 깊은 심연에서 불현듯 뛰쳐 올라온다는 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때 감정을 통솔하지 못하고 내뿜어 버리고 지배당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도.


 가족의 역학구조는 대물림된다는 것, 각자의 원가족의 역사 속에 되풀이되어 온 역학구조를 깨는 것이 이토록 어렵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부부상담 당시 <가족의 두 얼굴>을 읽으며 생각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이다. 

 내 상처는 내 상처일 뿐 그의 가족 역사를 통째로 부정하고 욕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분명히 그들의 자식 사랑에 헌신적인 부분이나 올바른 교육들도 존재한다. 단지 내게 가해진 것들이 나라는 사람과 너무 달랐고, 내게 요구해서는 안 될 선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윤리나 도덕적인 부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 부분은 다음 글에 이어서 써보려고 한다. 이제 내가 어떤 방향을 향해 가야 할 지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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