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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HereUs Mar 30. 2021

아이가 처음으로 '남의 돈'을 벌어 온 날


아이의 봄방학 첫날이다. 어제 저녁을 먹으며 아이와 하루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얘기를 나누었다. 


아이는 요즘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에 빠져있다. 마치 우리가 어렸을 때처럼, 옆집, 뒷집에 가서 아이들을 부르고, 서로의 집을 오가며 논다. 며칠 전 낮기온이 25도까지 올라가 여름 같았던 날에는 네 녀석이 수영복을 입고 뒷뜰에서 호스로 물을 뿌리며 놀다가 배가 고프다며 집 안으로 쳐들어와서 피자를 구워먹고 다시 놀러 나간 적도 있다.


아이는 잔뜩 들떠있었다. 방학동안에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하는 아침 조회도, 온라인 학습사이트 안의 숙제도 없다며 친구들 집에 몇시에 갈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대로 두었다간 아침식사도 하기 전 남의 집에 들이닥칠 것 같아서 일단 집 밖으로 나가서 놀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아침을 차려먹고, 필기체 쓰기 연습, 수학 문제 풀이, 글쓰기 워크북을 각 3페이지씩 마치고 나면 나가 놀 수 있다고 했다. 말하면서도 아이가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솔직히 미덥지 못했다. 괜히 아침부터 잔소리폭탄을 늘어놔야하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왠걸, 아이는 혼자 일어나서 토스트기에 미니 피자를 데워서 아침을 먹고는 먹은 그릇은 싱크대에, 포장지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약속한대로 필기체, 수학문제집, 글쓰기 워크북도 마쳤다. 그리고는 자전거를 타고 친구 집에 가서 한참을 놀다가 갑자기 종이 한 장을 손에 들고 집에 들어와서는 복사를 해달라고 했다.


1달러에 차를 닦아준다는 전단지다. 맨 위에는 ‘Car wash’ 라고 크게 써놓고 색색으로 멋을 부렸다. 가격을 형광펜으로 여러군데 써놓고 정말? 정말 1달러! 라고 문구도 써넣었다. 차를 닦고 싶으면 우리 집으로 오라며 주소도 적어놨다. 전단지를 하나 더 만들라고 하니 한 장 만드는데 30분 넘게 걸렸다며 더는 못하겠다고 한다. 복합기로 복사를 해주었더니 신이 나서 달려나갔다.


전단지를 다 돌렸는데도, 너무도 당연하게 손님이 없다. 우리에게 와서는 차를 닦지 않겠냐고 물었다. “아니, 괜찮을 것 같은데?” 하며 살짝 거절하자, 아이 친구가 “공짜로 닦아줄게요!” 하고 제안을 했다. 둘이서 주방세제와 대야를 들고 나가서는 꼼지락대며 차를 닦았다. 물기를 말려야한다며 집에서 키친타올도 가지고 나갔다. 그렇게 약 30여분 간 차를 닦고서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나와 남편에게 와서는 타이어 휠에 낀 먼지를 다 씻어냈노라고 자랑을 해댔다. 결국 남편이 아이와 아이 친구에게 1달러 씩을 주었다. 물값에 세제, 키친타올 값을 청구할까도 싶었지만, 세상 힘든 걸 벌써 알려줄 필요가 있나 싶어 일단은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손에 1달러 지폐 한 장 씩 들고 신이 난 두 녀석이 동네를 돌며 좀더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쳤고, 앞집 아저씨가 걸려들었다. 그 집 가서 민폐를 끼치나 했는데 아저씨에게 차를 우리집 앞으로 가져와야 닦아줄 수 있다고 했단다. 아저씨는 정말로 우리 집 앞에 차를 댔고, 두 녀석은 저녁 먹기 전까지 또 열심히 차를 닦아 둘이서 1달러를 벌었고, 야무지게 50센트 씩 나눠가졌다. 

오늘은 아이가 처음으로 ‘남의 돈’을 벌어 온 날이다. 저녁 식탁에 셋이 둘러앉아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했는데, 신나게 무용담을 자랑하던 아이가 갑자기 이렇게 말한다. “근데 앞집 아저씨,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kid라서 donation 한 것 같아. Basically 이건 Charity야.” 우리 부부는 비즈니스의 기본 원리, 투자 대비 소득에 대한걸 가르쳐 줄까 하다가 아이의 동심을 깨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었는데 아이는 제가 번 돈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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