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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HereUs Apr 02. 2021

스크린중독에 빠졌던 아이의 눈빛이 변했다.

아이의 봄방학이 거의 끝나간다. 매일 하기로 한 일, 아침을 먹고, 필기체, 수학, 글쓰기 워크북 하루 분량을 마치고 나면 하루 3시간까지 닌텐도로 게임을 할 수 있다. 닌텐도 게임을 할 때면 아이는 헤드셋을 쓰고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 아니, 그건 대화라기보다는 거의 괴성에 가깝다. 이전에 보던 스타크래프트 중계 게임 방송을 틀어놓은 듯한 기분이다. 


저녁을 먹는데 아이가 얘기를 꺼낸다. 게임에서 욕설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하길래 어떻게 했냐고 물었다. 아이는 말했다. "어 내가 게임 리더라서 그 사람 kicked out 했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잘했네." 아이가 이어서 말한다. "근데 그 사람이 또 들어왔어." 그래서 아이는 또 그 사람을 쫓아냈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저녁 식탁에서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고, 온라인 학습 시스템이 채 마련되지도 않은 상태로 집에 갇혀있게 되자 아이는 답답해했다. 두 달쯤 그렇게 셋이서 24시간 동안 집에 있으면서 서로를 버거워하다가 5월에 다니던 방과 후 학교 센터에서 특별 캠프를 한다고 해서 아이를 보냈다. 나와 남편에게는 일과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였고, 아이에게는 또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가을에 온라인 학습 시스템이 어느 정도 구축되었고, 그렇게 작년 12월, 우리가 한국에 다녀올 때까지 아이는 매일 학교가 아닌 센터로 등교해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나머지 시간에는 실외놀이, 수영, 실내 체육 등의 활동을 하며 보냈다. 그렇게 우리의 '뉴 노멀' 속 일상이 시작되었다.


작년 한국 방문은 예년보다 길었다. 자가격리 기간을 포함해서 약 5주간 머물렀다. 평상 시라면 방학이 아니었다면 아예 생각조차 못했을 거다. 인정된 결석이라고 해도 결석일수가 1년 간 19일이 넘어가면 안 된다고 한다. 한국에 가서도 시간 맞춰 온라인 수업을 듣기로 하고, 만약 접속이 불가능할 경우 대처할 방안까지 학교 측과 얘기해두고 항공편을 예약했다.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 정말 초 단위로 계획을 세워야 할 만큼 바빴다. 살던 렌트 집을 갑자기 비워줘야 해서 이사 갈 집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짐을 보관창고에 넣고 한국으로 갔다. 공항까지 가는 시간, 대기 시간, 비행시간 동안 아이는 그동안 못했던 게임을 맘껏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긴장이 풀려 기내식도 마다하고 계속 잤다. 


자가격리 기간 동안 우리 셋 모두 미국 시간에 맞춰 생활했다. 

그렇게 밤낮이 뒤바뀐 상태로 2주를 살고, 짧은 겨울방학을 맞았다. 청주와 서울을 오가며 아이는 닌텐도와 유튜브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었다. 1월 초 개학을 하고, 다시 미국으로 오기 전까지 한국 시간으로 밤 11시에 일어나 온라인 수업을 받았다. 마치고 나면 새벽 4-5시쯤 되었다. 아이는 24시간 중 거의 20시간 정도를 스크린 앞에 앉아있었다. 


다시 미국으로 와서도 집을 구하기 전까지 에어비앤비에서 지내며 온라인 수업을 받았다. 아침마다 아이를 깨워서 노트북 앞에 앉히는 게 일이었다. 너무너무 졸려했던 아이를 깨우면서 안쓰러웠다. 시차 적응이 쉽지 않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담임선생님의 연락을 받았다. 아이가 수업시간에 줌에서 카메라를 꺼놓고 있다고, 무슨 일이 있냐고 해서 아이에게 확인 후 담임선생님과 다시 대화를 했다. 그리고 아이가 꽤나 오랫동안 수업을 듣는 척만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게다가 개인학습 시간에 해야 할 과제를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우리에겐 그 시간이 쉬는 시간이라고 말해왔다. 그렇게 나는 아이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 들었다. 당시 심경 기록은 여기에... 


짧은 시간 동안 아이는 유튜브와 게임에 아주 깊게 빠져있었다. 게임기에 시간제한을 걸어놓아도 소용이 없었다. 게임기를 숨기니 집안 곳곳에 있는 태블릿, 노트북, 오래된 휴대폰 등을 몰래 방에 가지고 들어가 우리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게임을 했다. 일어나기 힘들었던 건 시차 적응 때문만이 아니었던 거다. 발각이 될 때마다 우리는 화를 냈고, 벌을 주었다. 유튜브나 게임 사이트를 차단을 하면 아이는 계속해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아이가 미웠다. 마치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중독자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많은 위로를 받았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부모들이 댓글로 자신의 고민을 나눴다. 오랜 블로그 친구가 중독을 연구하는 임상심리상담사인 동생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창피했지만 그래도 고마웠다. 며칠 후 조언이 문자로 도착했는데, 나는 한 단어를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방치". 방치도 학대의 일종이라고 했다. 방치할 거면 차라리 밖으로 데리고 나가 놀이터에서 방치하라고 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았지만, 그걸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내가 아이를 방치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다시 내 마음속 망상 생성의 버튼이 눌렸다는 걸 깨달았다.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친구에게 말했다. 조언 고맙다고, 그런데 방치라는 말이 너무 아프다고. 친구는 한 발 물러섰지만, 내 마음이 얼마나 잘 전달되었는지는 의문이다. 마음을 나누고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기에, 더욱 아팠다. 방치했다는 게, 반쯤은 사실일 수 있었기에 그랬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사 후 동네에서 또래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서 아이는 그때의 스크린 중독에서는 벗어난 것 같다. 아이의 눈빛이 다르다. 초점 없이 공허한 눈, 그 눈을 바라봤을 때 느꼈던 내 공포심을 아직도 기억한다. 


중독이 무서운 건, 이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아이는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게임과 유튜브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고, 친구 집에서 놀다 온다. 동네에 남자아이들보다 여자아이들이 많아서 간혹 '놀아주느라' 인형 놀이를 해야 할 때도 있다고 고백한다. 어제는 손톱에 파란색 매니큐어를 칠하고 왔다. 친구가 공짜로 발라준다고 해서 "Why not?"하고 시도해 봤다고 한다.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를 멈추지 않는 아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오늘처럼 아이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아이가 내게 무언가를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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